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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디디아 Aug 23. 2024

용기가 내자, 삶이 다할때까지  

북유럽 여행기 

올 여름 휴가를 어찌 보낼까 생각하다 문득 지금이 아니면 아이들과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모두 가보고 싶었던 북유럽을 가기로 정하고 급히 항공권을 예매한 뒤 거기에 맞추어 일정을 조율했다. 21년 동안 언젠가는 북유럽에 가보리라 생각만 했는데, 24년 7월24일 마침내 나는 헬싱키행 비행기를 탑승했다. 오래된 바람이 현실이 된 순간이다.  


무엇을 보게 될까? 누구를 만나게 될까? 낯선 것에 대한 설렘과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과 염려로 여행이 시작된다. 헬싱키공항은 한여름에도 북유럽답게 겨울 옷, 겨울신발, 겨울 것들이 가득하다. 습하고 뜨거운 인천공항을 떠난지 14시간 후 온통 겨울스러운 헬싱키 공항을 보니 여름휴가를 제대로 온 듯하다. 


북유럽의 첫 여행지는 덴마크 코펜하겐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코펜하겐의 뉴하운(Nyhavn) 운하는 17세기에 건설된 상인과 어부들이 이용하는 항구였는데 당시의 목조 주택들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서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생애 일부를 이 운하 근처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알록달록 가지런한 목조건물이 마치 동화 속 풍경 같다. 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도시를 둘러보면, 코펜하겐의 주요 랜드 마크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운하를 따라 과거와 현재의 건축물을 적당한 거리에서 조망하면서 도시의 역사와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운하투어는 짧은 시간동안 코펜하겐을 둘러보는 여행자에게 추천할만하다. 


  코펜하겐 중심을 가볍게 걷고 다소 외롭고 슬퍼 보이는 인어공주 동상과 덴마크왕실의 여름 별장이라는 르네상스양식의 로젠보르성을 빠르게 둘러본 후 노르웨이로 넘어가는 스칸디나비아 크루즈에 탑승했다. 코펜하겐을 비롯한 북유럽나라들은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부유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하고 소박한 코펜하겐을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슬쩍 보고 가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14시간 비행직후 코펜하겐을 급하게 둘러보느라 피곤했는데 크루즈 선상에서 멀어져 가는 도시를 바라보며 북유럽 청년이 부르는 팝송에 생맥주을 한 잔 마시니 그제야 여행의 설렘이 느껴진다. 

코펜하겐 뉴하운 



 처음 타보는 크루즈의 선실은 좁긴 해도 깔끔했고 하루 밤 묵기에 충분했다. 흔들림이 있긴 해도 요람 같아서 예상보다 편안했다. 아침 일찍 깨어 선상으로 나가보니 회색 하늘에서 회색바다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덴마크의 하늘과 바다는 파란색이었는데, 노르웨이의 첫날은 온통 회색이다. 바다는 언제나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늘의 색은 우주공간에 구름과 태양과 달과 별빛을 담은 것이니, 결국 바다는 자기 안에 우주를 품고 바람에 흔들리며 자기 색깔을 낸다. 생각해보면 사람도 바다와 비슷하다. 너와 내가 서로를 마주보고 내 속에 너의 색을 품고 흔들리며 나의 색깔이 된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마주하고 품느냐에 따라 나의 색은 달라질 수 있다.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는 제법 볼게 많은 큰 도시다. 뭉크박물관과 오케스트라 하우스에서 바라보는 오슬로의 바다와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비겔란 조각공원도 매우 인상적인 장소였다. 구스타프 비겔란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북유럽의 로댕이라고 불리는 노르웨이 대표 조각가다. 그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모토 아래 다양한 군상을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과 삶을 작품으로 표현하며, 삶과 죽음, 윤회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조각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희로애락이 섬세하게 조각된 200여점의 작품을 보노라면 거대한 야외미술관에 온 듯하다. 그래서 비겔란 조각공원은 커다란 나무숲과 작품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철학자의 걸음으로 천천히 누려보길 추천한다. 분명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특별한 시공간이 될 것이다. 

오슬로 비겔란 공원


노르웨이는 수천 년 동안 빙하가 만들어낸 자연풍광을 보는 것이 핵심이라서 오슬로에 도착 후 릴레함메르와 라르달을 거쳐 게이랑에르까지 송네피오르드를 향해 여행한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노르웨이의 자연에 놀라고, 풍부한 자원과 높은 국민소득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검소하고 심플한 삶에 다시 놀란다. 여름별장으로 사용하는 숲속 집은 전기도 없이 최소한의 도구만 갖추고 생활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가 미덕인 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노르웨이 서부해안을 따라 펼쳐진 송네피오르드는 길이 204km, 깊이 1308m로 노르웨이서 가장 길고 깊어 피오르드의 왕이라고 불린다. 낙석사고로 요정의 길이 폐쇄되어 우리는 달스니바 전망대를 거쳐서 게이랑에르로 들어갔다.  가파른 산길을 돌아서 달스니바로 향하는 굽은 길은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압도적인 풍경이 시작된다. 급경사의 좁고 아찔한 커브 길을 오르다 보면, 해발 1,500미터에 위치한 달스니바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본 빙하호수와 게이랑에르의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파란하늘 흰 구름 사이로 높게 솟은 산과 멀리 푸른 물길이 흐르는 피오르드가 보였다. 항구에 정박한 거대한 크루즈를 보며 게이랑에르피오르가 바다협곡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또 반대편으로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듯한 바위산의 고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어디선가 겨울왕국 엘사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만 같았다. 오랜 세월 빙하가 그려낸 장엄한 풍경 앞에서 마땅한 언어를 찾지 못해 나는 할 말을 잃은 체 그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피오르드를 바라보며 막 구운 계피향 가득한 시나몬 빵을 씹으며 후각과 미각을 더하니 이보다 좋은 여름휴가가 있을까 싶다.

송네피오르드


피오르드의 웅장한 풍경과 마주했을 때, 수천 년에 걸친 자연의 지속성과 생존력에 경외감이 든다. 빙하박물관의 영상을 보면서 고대 빙하기의 이곳을 상상해본다. 한때 이 지역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에 뒤덮여 있었을 것이다. 빙하기의 차가운 숨결 아래, 느리지만 끈질기게 움직이는 거대한 빙하가 산을 타고 흘러내리며 엄청난 힘으로 매일 조금씩 산악 지대를 깎아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직한 조각가처럼 거대한 바위를 가르고, 토양을 밀어내며 돌멩이 칼로 좁은 협곡을 만들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거대한 빙하가 서서히 녹아 후퇴하자 깊고 장엄한 계곡만 남았을 테고, 녹아내린 빙하수와 바닷물이 양쪽에서 흘러들어와 뒤섞이며 깊고 푸른 바다가 되고 오늘날의 송네피오르드가 되었을 것이다. 페리를 타고 송네 피오르드 협곡사이를 흘러가면서 나는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 바다위로 병풍처럼 늘어선 모습과 아래로는 빙하가 녹은 물과 바닷물이 뒤섞여 흐르고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피오르드는 완성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니 매일이 다를 것이고, 나 또한 진행형이니 내가 다시 이곳에 온다 해도 같은 피오르드와 같은 내가 마주할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내가 마주한 풍경과 감동은 오직 ‘오늘의 것’이다. 


북유럽의 7월은 밤11시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다. 라르달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늦은 저녁을 먹은 후 백야의 조용한 마을을 산책했다. 연한 파스텔색의 낮은 목조주택들이 큰 산에 둘러싸여 아담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와 키 큰 나무 사이를 산책하며 동네 슈퍼에 들러 읽지도 못하는 글자를 보며 어떤 식재료인지 추측해보거나 이국의 제철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어보는 재미도 여행의 묘미다. 노르웨이의 납작 복숭아와 감자 칩은 그 맛이 일품이다. 아삭하고 상큼한 식감을 가진 남작한 복숭아는 새우깡도 아닌데 자꾸 손이 간다.

라르달 마을


다음날은 아침 일찍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여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플롬 산악열차를 탑승했다. 플롬 산악열차는 1923년에 착공하여 1940년에 완공되었다. 기후조건도 열악한 노르웨이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철도를 건설하는 일은 그 당시 엄청난 도전이었고, 많은 이들의 부단한 노력과 기술력이 집중된 대규모 프로젝트였으리라. 그러니 왕복 1시간 30분정도 소요되는 플롬 산악열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나 관광코스 넘어, 인간의 끈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조화를 만들어 냈는지를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기념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뮈르달과 플롬 사이를 잇는 산악열차는 긴 협곡 사이를 오가며 험준한 산악 지대를 가로지른다. 기차가 어두운 터널을 하나씩 빠져나올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놓칠까 싶어 좌우로 바삐 눈알을 굴리며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깎아지른 듯 한 협곡, 울창한 숲, 웅장하고 시원한 폭포, 멀리보이는 작은 북유럽의 집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작품사진 같다. 신비한 곳마다 전설이 있듯 이곳에도 전설의 요정이 산다. 효스폭포 근처에 나타난다는 아름다운 훌드라 요정을 보고 싶거들랑 요정의 근무시간을 미리 확인해두어야 한다. 플롬 산악열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역사문화 공간이다. 덜컹거리는 빈티지한 열차 안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노르웨이 산악지대의 풍경을 바라보자니  열차에서 내려 고불고불한 지구 북쪽 길을 트레킹 하고 싶은 열망이 심장을 두드린다.

베르겐

노르웨이 서부 해안에 자리 잡은 베르겐은 웅장한 피오르드와 과거 한자 동맹시대의 상인들이 살던 목조 건물들이 옹기종기 어우러진 오래된 도시다. 11세기에 건축되었고 한때 노르웨이의 수도였으며, 한자동맹 후에는 북유럽 서해안 무역의 거점으로 번성했던 도시다. 중세시대 목조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세기에 오슬로로 수도가 바뀌고 몇 차례의 화재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쇠퇴하긴 했지만, 브뤼겐 복원과 함께 관광도시로 발전하여 다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도시가 되었다. 베르겐 어시장에서 점심을 먹을까하여 기웃거리다 때마침 한국 청년이 일하는 식당을 발견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타국에서 조카를 만난 듯 했다. 싹싹한 청년 덕분에 베르겐의 신선한 해산물 요리로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우연한 만남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베르겐에서 예일로로 가다 보면 처음 보는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난다. 하르당에르의  끝없이 펼쳐진 고원과 빙하와 호수를 지나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은 다 내려놓고 그저 묵묵히 풍경을 바라볼 뿐이다. 그 길 끝에 어마어마한 뵈링폭포을 마주했을 때 그 감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떠오르는 곳이다.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보지만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뵈링폭포의 장엄함을 흠뻑 눈에 담아 마음속 추억으로 접어둔다. 여행을 하다보면 보았으나 타인과 공감하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고 미디어기술로도 담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다양한 SNS시대를 살면서도 타인의 여행은 나의 여행이 되지 못하나 보다. 

뵈링폭포


노르웨이 피오르드를 본 후 다시 오슬로를 거쳐 스톡홀름과 헬싱키를 둘러보면 9일간의 북유럽의 여행이 그새 끝나간다.  오슬로의 칼요한거리와 왕궁, 아름다운 스톡홀름 시청사와 바사박물관과 노벨박물관, 헬싱키 대성당과 원로원광장, 기도가 절로 나오는 암석교회, 마켓광장등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우러진 모습이 각 도시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다. 과거를 품은 현재는 상당한 불편함이 존재했다. 매끈한 아스팔트대신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어야 하고,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집에서 사는 일이 불편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불편한 과거를 삭제하지 않고 그 속에서 현재를 살아간다. 그것이 그들이 선택한 아름다운 삶의 방식이며 후대에게 전하는 건강한 유산이다. 아픔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픔 없는 땅도 없다. 아픈 역사를 딛고 평화와 공존의 삶을 세우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수고하고 협력하였을지 가늠해본다.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를 알게 되고,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문화를 보게 된다. 그것들 앞에서 때론 기가 죽고 때론 기가 산다. 일상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먼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과 가치가 다르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도 다르니 먼 나라와 다른 문화를 접하다 보면 인생의 다른 가치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고 나와 다른 타인을 좀 더 포용하게 된다. 
 

스톡홀롬 시청사


 여행 중 어느 저녁 70대 노부부와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여행이 힘들진 않으시냐는 질문에 ‘힘이 들지만 다닐 만하다. 장거리 국제 여행이 겁이 나서 마지막 날까지 망설이다가 따라 나섰는데, 용기 내어 오길 잘 한 거 같다. 여행 중 규칙적인 생활을 못하니 혈당조절이 엉망이 된 거 같아 당뇨가 걱정되긴 한다.’ 며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여행일정을 따라가지 못해 민폐가 될까봐 주저하다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부인의 설득에 못 이겨 따라나섰단다. 아내 분은 달스니바 전망대에 서니 “내가 다시 이 아름다움을 볼 수는 없을 거야” 라는 생각과 감격에 눈물이 나더라며 이제는 여행을 다닐 때 돈과 건강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노부부의 말씀에 마음이 시큰해졌다. 


오십이 넘으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도, 낯선 것을 시작하고 배우는 것도,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질병과 이별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다. 주저함을 내려놓고 삶을 내 의지대로 살아내려면 매일 용기가 필요하다. 젊은 시절보다 용기를 내야하는 순간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내게 용기를 주는 사람들과 친하고 싶다. 혼자서는 못할 거 같은데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거 같은 용기를 주는 사람들과 동행하고 싶다. 


용기 있는 70대 노부부를 보면서 나는 조용히 다짐해본다. 


용기를 내자! 

죽는 순간까지 용기를 내어 사랑하고, 여행하고, 시작하고,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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