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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호 Feb 07. 2024

"경찰관님, 아기 키워봤어요?"

"결혼은 하셨어요?"

2015년 9월 학교전담경찰관 업무를 맡은 지 3일째 되던 날, 처음 만난 학부모에게 들은 첫마디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업무와 관련 없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머님 업무와 관련 없는 질문은 삼가 주세요.”라고 딱딱하게 대응했다.

삼남매맘 : “경찰관님 아이는 키워봤어요? 아니 결혼은 하셨어요? 제가 애만 셋이에요.

최승호 : (갑자기 애 셋) 업무와 관련 없는 질문은 삼가 주세요.

삼남매맘 : 셋째도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둘째가 친구를 때린 것도 아니고, 욕 몇 마디 했다고 초등학교 4학년을 불러서 진술서를 받고, 학폭위(당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한다는 게 말이 돼요?


솔직히 당시엔 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이 엄청나게 대단하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인 것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금이나마 반성한다. 지금 같았으면 “예, 어머님 학생 간 꼭 신체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친구에게 욕설 행위를 했다면 학교폭력 성립합니다. 피해 관련학생이 학폭위 개최를 원하면 가능해요.” 정도로 답변했을 텐데 당시엔


최승호 : 어머님, 학폭위는 학교 측 절차이고, 저는 학폭위 위원 자격으로 참석합니다. 더 문의하실 사항 있으세요?

삼남매맘 : 학교폭력 관련해서 학교전담경찰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던데 뭐 이래요?

최승호 : (급 흥분) 어머님, 자녀가 상대 학생에게 여러 차례 고의적으로 욕설한 행위가 사실이라면 ‘학교폭력’ 맞습니다.

삼남매맘 : (화를 내며) 알겠다고요. (통화 끊김)


당시 학폭위에서 학교폭력 사실 확인되어 선도 조치를 이행하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3년 뒤)

최승호 : 계양경찰서 여성청소년과 학교전담경찰관 최승호 순경입니다.

삼남매맘 : (다짜고짜) 저희 아이 관련해서 상담받으려고요.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인데요.

최승호 : (말투, 억양이 낯설지 않다.) 예, 어머님 어떤 사인인가요?

삼남매맘 : 예 저희 딸아이가 학교에서 친구가 기분 나쁘게 해서 욕을 몇 마디 했다고 하는데요. 학교에서는 무조건 저희 딸아이가 욕을 했다고 가해학생이라며 학폭위가 개최될 것 같다고 해서요. 경찰관님 이게 말이 되나요?

최승호 : 예 어머님, 사안을 자세히 들어봐야겠지만 일단 친구에게 욕설한 행위도 ‘학교폭력’ 성립 가능합니다.

삼남매맘 : (갑자기) 아니, 경찰관님 결혼은 하셨어요? 아이는 있으세요? 제가 애만 셋이에요.

최승호 : (자신 있게) 예, 어머님 저 결혼했습니다. 애는 셋은 아니지만, 애도 있습니다.

삼남매맘 :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떻게 무조건 학교폭력이라고 말씀하세요?

최승호 : 어머님, 요즘은 학생 간 신체폭력 보다도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거나 욕설 행위 등 언어폭력으로도 학교폭력 상담, 신고 많이 들어옵니다.

삼남매맘 : 아 그래요? 경찰관님께서 분명히 학교폭력 맞으시다고 하셨죠?

최승호 :(녹음하는 게 분명하다. 더 친절하게) 예, 어머님 언어폭력도 명백한 ‘학교폭력’ 맞습니다.


위 학부모에게 당당하게 대응하고자 3년 간 결혼, 임신, 출산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정말 사랑하는 와이프를 만나 결혼을 하고, 출산까지 했는데 우연히 학교전담경찰관 업무를 하며, 육아를 병행하니 하루 24시간 가정 안팎에서 아이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는 점은 어쩌면 나에겐 큰 행운이자 배움이다. 업무 시작과 만난 삼남매맘의 동기부여 혹은 자극으로 정말 많은 위기청소년과 보호자를 만났다. 8년 차 학교전담경찰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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