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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수다쟁이 May 14. 2020

대체 밥이, 밥이 뭐길래!

밥밥디라라~(밥상 이몽)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10대와 40대, 20대와 50대, 50대와 80대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한준명 씨는 은퇴를 하며 어머니가 사는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김덕순 할머니도 다르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을 모시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아들을 이고 사는 거라 생각했다. 떨어져 산만큼이나 생각의 차이는 컸다.


여든이 넘은 노모는 여기저기 쑤시는 곳이 많다면서도 매번 아들 끼니를 챙겼다. 매일 무슨 반찬을 먹일지 고민이라면서, 밥 차리는 게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아들이니까 먹여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내가 몸이 죽어라 아파도 아들 내외가 먹을 것을 생각해서 밭일을 해야 한다. 옥수수도 심고 고추도 심어야 일 년 내내 자식들을 먹일 수 있다. 김 할머니는 자신이 그렇게 ‘지들’만 생각하며 위해주는데 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지 아들이 야속할 뿐이다. 아무것도 안 하면 뭘 하며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았기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아들의 말은 너무 어렵다. 특히, 봄에는 할게 너무 많다. 시금치, 쑥, 머위, 고사리 등등 제철에 나는 나물을 캐다 먹여야 한다. 사방이 새순이 돋는 봄나물인데, 남들이 다 캐가는 꼴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는 없다.


어머니가 야속하긴 한준명 씨도 마찬가지다. 벌만큼 벌었고 모을 만큼 모아 제 나이에 은퇴를 했다. 이제 편안히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었는데 사사건건 부딪힌다.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가 아무 일도 안 하고 동네 사람 만나 윷도 놀고 수다만 떨었으면 좋으련만, 하루 종일 아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먹이려 하고 밭일을 거두려 한다. 평생 일밖에 모르고 산 어머니가 안쓰럽고, 이제 쉴만한데도 쉬지 못하는 게 밉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새벽에 일어나 밭을 일구지만 노모는 기어코 밭에 나와 한준명 씨를 참견한다. 늙은 홀어머니는 아들을 부엌에도 오지 못하게 하고, 부엌일을 해본 적 없는 한준명 씨 또한 부엌일은 엄두가 안 난다. 가운데에서 난감하기만 한 며느리는 매번 새 밥을 지어놓고 출근을 하지만, 김 할머니는 굳이 자신이 새로 한 밥을 아들에게 먹이고 싶어 한다.


한준명 씨는 김 할머니가 밥을 차리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 먹기 싫다.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 그 누가 해주는 밥보다 가장 입맛에 맞지만, 이제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 김 할머니는 정말로 밥을 차리는 게 힘들다. 그렇지만 혼자 차려 먹을 수 없는 노릇이며, 아들을 굶게 두고 싶지도 않고 아들과 밥을 함께 먹고 싶은 마음도 있다. 또 아들이 본인이 차린 밥을 가장 맛있게 먹는다는 걸 알고 있다. 매번 반찬을 무얼 놓아야 할지 고민이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 위주로 장을 보고 아들이 좋아하는 요구르트도 꼭 사다 놓는다. 여든이 넘은 노모는 환갑을 바라보는 아들에게 먹일 요구르트를 고르는 게 일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매일 같은 밥상에 앉아 다른 생각을 하느라 골치가 아프다.

대체 밥이, 밥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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