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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Jun 25. 2022

나의 작고 소중한 할머니

생각만 해도 애틋해지는 이름이 있나요?


 어린 시절, 혼자 작은 침대에서 자다가도 으앙 하며 눈치 안보고 울어 재끼던, 기억도 가물가물한 나의 어린 시절 나를 키워준 건 아빠도 엄마도 아닌 외할머니였다.


 남들보다 영특하게 태어난 재주때문인지, 근성 하나는 빠지지 않는 무거운 엉덩이 덕인지,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유명했던 나에게 할머니는 늘 그런 말을 했다. 너는 애기때부터 그렇게 착하고 예뻤다. 다른 애기들처럼 잠투정도 안하고 반찬투정도 안하고 애기가 얼마나 조용하고 착했는지. 


 할머니의 기억도 다른 기억들처럼 세월이 지나며 미화된건지, 내 기억이 단편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 커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에, 지금까지도 선명한 기억 한 조각이 있다. 할머니가 그 때는 커보였던 등에 나를 업고, 보자기를 두르고, 다음 날 아침 일을 나가야하는 엄마나 아빠가 깰까 내가 울면 잘 달래서 보자기에 나를 들쳐 매고 동네를 터벅터벅 걷던 밤. 자라면서 울지 않는 아기가 어디있었을까. 그럼에도 할머니는 늘 나를 칭찬했다. 어릴 때부터 울지도 않고 똑똑하고 착했다고.


 우리 할머니는 충청도 시골에서 외할아버지를 주선으로 만나 결혼해 시댁에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그 집에서 우리 엄마를 포함한 4남매를 낳고 무려 4번이나 임신하고 출산하는동안 농사일을 쉬지 않고 할아버지를 도와 논밭에 매일을 나가셨다고. 결혼 후 쉽게 임신이 되지 않아서 밥값도 못하는 년이라면서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다고 한다. 아이를 낳을 환경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농사일을 하다가 진통이 와서 밭에서 엄마를 낳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초등학생 때였나, 아무튼 자식들이 굉장히 어릴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만 들었다. 


 엄마와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아버지와 남편은 아니었나보다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할머니는 그 뒤로 혼자 4남매를 키우며 손에 잡히는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빌딩청소부, 가정부, 식당일과 같은. 이모와 엄마는 어릴 때부터 똑똑해서 성적이 좋았고, 두 삼촌은 평범했다. 4명의 자식을 모두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상황이 되지 않았고, 할머니는 당시의 많은 가정들처럼 아들 둘을 대학에 보내는 걸 선택했다. 중학교 때 전교1등을 하던 엄마와, 미술과 옷을 좋아해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했던 이모는, 할머니의 결정에 따라 대학을 가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 일은 할머니가 80이 넘은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하는 일이 되고야 만다. 고생만 시키다 간 할아버지를 만나서 결혼한 것조차도 후회하지 않는다던 할머니가, 그 때 너희 엄마랑 이모를 하고 싶다는 공부 더 시켜줄걸 그랬다며 후회하고 이모와 엄마는 할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이 결정을 두고두고 원망한다. 어쩌면 이 상황의 외부인인, 제3자인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어리고 모든 게 처음이었을 젊은 엄마이자 가장인 할머니의 마음을 감히 내가 어떻게 짐작을 할까 싶다. 


 이제 80살을 넘어 90살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그녀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의 한 초등학교에서 청소부 일을 했었다. 백화점이나 대학교를 가서 할머니 비슷한 또래의 청소하시는 분들을 보면 꼬박꼬박 감사하다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 할머니가 겪는 세상도 이제는 조금은 따뜻하길 바라면서. 20대 후반이 되어도 자꾸 전화가 와 내게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묻는 나의 작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시작한 건,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냥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무 조건없이 받았던 그 사랑을 평생 잊지 않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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