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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이 Jul 14. 2020

연애와 이별이 반복돼도 그래도 '나'

내 첫 번째 연애는 성인이 되고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 같이 학교를 다니고 같이 불안한 미래를 감당하는 그런 연애가 부러웠는데, 이미 나에게는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 된 지 오래였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과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같은 선상에 두지 못하는 사람이라 번번이 연애에 실패하고는 했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 마음과 그런 마음에서 드러나는 행동들이 너무 싫었고, 나는 그 누군가에게 그런 행동을 똑같이 보이고는 했다.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인데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사랑받지 못하는 현재가 영원 같았다.


정말 오랫동안 믿어왔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성인이 되고 몇십 년이 지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단단히 믿으면서도 또 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 미래를 자주 꿈꿨다. 그 사람한테 꼭 말해주리라 다짐도 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슬퍼했던 것이라고.


그렇게 시작된 연애였다. 어느 누구도 날 사랑할 일이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던 와중에 시작된 연애였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내 마음속 응어리는 금방 사라졌다. 그 사람에게 사랑받는 나는 내가 바라보던 나보다 훨씬 근사하고 멋져서 나는 '사랑받는 나'를 사랑하게 됐다. 그 힘으로 못해내던 일이 없었다. 생각만으로 온몸이 덜덜 떨리던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욕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고 나를 아껴주지 않는 인연들과도 쉽게 멀어질 수 있었다. 매일 바쁘게 학교를 가고 알바를 하면서도 그 사람의 존재가 힘이 됐다.


나는 안정적인 사람이 되어갔고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말을 아끼고 행동을 조심하며 가끔은 상대방이 과분하다는 생각에 잠못이루기도 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확신이 사라진 자리에 사랑받는 내가 점점 커졌다. 그때는 이미 '나'보다 '우리'가 훨씬 커진 상태여서 나의 존재 가치나 미래도 우리라는 이름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첫 번째 이별이 곤혹스러웠다.


애인과 헤어진 게 아니라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십몇 년간 혼자 보냈던 시간들이 이질적이었다. 혼자서 잠에 드는 것도 내 하루를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걸 모르겠는 내가 한심했다. 노래와 강아지가 좋아지고 담배냄새가 역해졌던 게. 원래 난 그런 사람이 될 예정이었던 건지 아니면 갑자기 나타난 너라는 존재가 나를 이렇게 바꾼 건지. 그러면 너가 없는 나는 노래를 좋아해도 되는 건가? 너가 없는 나는 너랑 같이 가던 식당을, 카페를, 술집을 계속 좋아해도 되는 건지. 그런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그리고 나아가자고. 그래서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다. 그때는 내가 잘못했지, 내가 나빴지, 내가 어렸지. 그렇게 합리화한 순간들은 금방 나에게 되돌아왔다. 사랑받는 내가 있던 그 큰 자리에 다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응어리가 피어났다. 누군가를 만나도 보고 여행을 떠나도 보고 숨쉴틈 없게 바쁘게 살아도 봤다. 쉽게 메워지지 않는 그 자리가 오래 공허했다. 외로움과 구분이 어려운 그 감정에 오래오래 허덕였다.


결국 나한테 필요했던 건 나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알려준 수많은 감정도 그래서 우리가 아니라 나니까.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과 추억도 결국 다 내 발자취니까. 그렇게 나를 찾으니 모든 게 빠르게 괜찮아졌다.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섬뜩할 때가 있다. 아직도 그렇고 또 언젠가 큰일이 닥쳐올 때마다 내 탓을 하며 나를 낮추겠지. 노력을 한다고 맘처럼 되지 않는 게 사랑이라서 유독 그랬다. 그럴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집을 치우고 운동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꼭 이쁜 접시에 담는다. 전기세가 신경 쓰여 잘 켜지 않는 에어컨을 켜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을 해준다. 그러면 놀랍게도 모든 게 괜찮아진다. 내가 나를 아끼니까 그걸로 된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그냥 배부르고 시원하니 기분이 좋아진 걸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연애를 한다고,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평생 나일 것이고 언젠가 프러포즈를 받으면서도 사랑받지 못할 미래를 두려워하게 되겠지.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을 해도 언젠가 누군가와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될 것이고, 당장 만나는 연인과의 백년해로를 꿈꿔도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그런 건 없고 나는 그냥 나아가는 거다. 내 탓으로 훌훌 털어도 되고 또 가끔은 상대방을 탓하며 계속 나아가리라.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밀어내다가 상처 받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고 넋두리를 하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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