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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원 May 07. 2020

가위손 이야기

매년 세법이 개정되면 출간된 서적의 교정도 봐야 하고, 출간할 서적의 내용도 추가해야 한다.

그게 다 1월의 사정인데 또 1월은 반기별 원천징수신고, 부가가치세 신고를 비롯해 연말정산서류도 챙기고 2월의 면세사업자 수입신고도 준비해야 하는 달이다.

사실 세무사가 가장 바쁜 달이 1월이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송년회 때 다 못 만난 분들과 신년회 등으로 회식도 잦은 달이니 도무지 조석으로 쉴 틈이 없다.

게다가 각종 용역업무를 수임했다면 주말이고 뭐고 늘 사무실에 나가야 한다.

메모장에 마치지 못한 일들을 보면서 주말에도 묵묵히 사무실에 나갔는데 오늘은 도무지 쉬고만 싶다.

아내와 맛있는 겨울 별미도 먹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서 비비적 거리며 거실 소파와 안마의자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수산시장에  보러 같이 가잖다.

"머리 감고 올게"

그러면서 겨울 내내 자르지 않은 긴 머리를 단발머리로 자르고 외출하고 싶다며 잘 드는 가위를 건네준다.

"당신이 잘라줘"

`응?`

아내의 머리를 가끔 조금씩 자른 적은 있어도 긴 머리를 단발로 잘라 준 적은 없었는데 망설여진다.

하지만 늘 아침마다 내 콧수염을 다듬고, 길어진 앞머리는 종종 스스로 다듬는 가위질 솜씨를 믿고서 "도전" 한다.

"가위손처럼 멋지게 잘라줘~"

`그래, 팀 버튼의 가위손처럼 화려한 가위질을 보여줄게`

거실 바닥에 작년 달력을 깔고, 아내를 앉히고 바로 옆에서 효도의자를 가져와 앉는다.

"턱선에 맞춰서 잘라줘요"

물 묻은 아내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곱게 쓸어내려 가지런히 정렬한다.

턱선에 맞춰 손가락 한마디 정도씩 서걱서걱 잘라낸다.

"잘린 머리가 속옷 속으로 들어가서 간지러워요"

`좀 참아. 곧 끝나`

효도의자로 아내의 몸을 한 바퀴 돌면서 턱선에 맞춰 다 잘라내고는 다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으로 정렬한다.

마저 잘리지 않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이제 일어나서 머리 말리고 와~"

"다 끝났어요?"

"응, 머리카락 치워야 하니까 빨리 화장실 가서 머리 정리해"

아내가 머리를 정리하고 말리고 있을 때 거실 바닥을 청소기를 밀어낸다.

어느새 건넌방에 들어가 머리를 말리던 아내가 약간 하이톤으로 얘기한다.

"미용실 갔다 온 느낌이야"

"잠시만"

아내의 말린 머리카락을 다시 보고선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마저 손본다.

"여보, 난 당신이 내 머리카락을 만져줄 때가 좋더라"

사무실 나가지 않고 게으름 부린 토요일 오후에 아내와 또 재밌는 추억을 만들었다.

"이제 장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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