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 없이 순서를 지키는 봄꽃들의 개화는 신비할 뿐이다. 매화가 이른 봄, 겨울을 보내는가 하면 목련이 탐스럽게 봄의 시작을 알리고, 연이어 앙증맞은 개나리가 무리지어 봄의 전개를 일러준다. 그리하면 갑작스레 벚꽃이 만개하여 온 천지를 들뜨게 만든다. 이 맘 때즘이면 봄밤조차 설레는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짧은 개화는 이내 분분한 낙화로 아쉬움을 남기고 거리를 하얀 꽃잎으로, 붉은 꽃대로 물들이고 사라진다.
이제 키 작은 철쭉과 영산홍이 여러 색으로 피어나며 빈 자리를 메운다. 야산에선 진달래가 물들어 간다. 벚꽃의 빈자리를 또 다른 친구들이 메워준다. 그러나 벚꽃만큼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보자마자 봄빛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하는 꽃이 있을까. 이런 아쉬움을 채워주는 꽃이 다름아닌 겹벚꽃이다. 벚꽃잎이 꽃비로 내리고 딱 이주 뒤쯤 개화하는 겹벚꽃은 더욱 풍성하고 화려함으로 우리를 한봄에 젖게 한다.
꽃들이 온몸으로 깨쳐주는 <화무십일홍>의 진리와 마지막까지 아름답고자 분홍 꽃그늘로 시선을 끄는 겹벚꽃의 고고함에 찬사를 보낸다.분홍 꽃물 가득 물든 사람들의 미소 또한 화사한 사월이라 다행이었고, 위로였다.
분분히 낙화해버린 벚꽃의 아쉬움을 달래듯 사월 셋째 주쯤이면 만개하는 왕겹벚꽃을만나러 매년 경주 불국사로 기꺼이 간다.단일 겹벚꽃의 군락으로는 최대이지 않을까 싶은 경주 불국사 후문 초입의 언덕마당은 매년 이맘때 찾지 않으면 서운한 곳이다.
작년에도 변덕스런 봄날씨에 보슬비가 흩날렸으나 온통 만개한 꽃의 화사함에 취했었다. 올해는 살짝 이른 개화로 비슷한 시기 방문이었지만, 분홍꽃들 사이사이 벌써 초록잎이 제법 돋아 있었다. 그러나 또 이렇게 바닥에 분홍 꽃가루를 깔아 놓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감상할 기회가 되어 더더욱 좋았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분홍 봄빛으로 눈이 부신다.
멀리서 봄빛 가득한 분홍 꽃무리를 보는 것도
가까이서 꽃송이를 온 시야 가득 담아보는 것도 황홀하다. 제법 많은 외국인들도 무리지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고,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