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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주리 Jan 06. 2021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혹자'를 찾습니다

재택근무와 가정보육의 한가운데, 전업주부 엄마의 자리는?

코로나가 이어지면서 남편의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가족 모두가 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째깍째깍 어린이집으로 갔던 아이까지 집에 있다 보니 세 명이 종일 북적이며 같이 지낸다. 

‘재택근무’라는 것에 대한 코로나 이전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한 번 피고 우아하게 아메리카노와 크로와상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영자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한 입 들이켤 때면 뉴요커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아침 9시에 맞춰 편안하지만 정돈된 홈 오피스 룩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화상 회의를 통해 오늘의 안건을 주고받고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한다. 클래식 음악이 홈 오피스에 흐르고, 오전의 가뿐 햇살이 책상 한편을 비춘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재택근무’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아이는 아빠도 집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해서 계속해서 방 문을 열고 그의 무릎 위로 올라가려 한다. 회사에서 가져온 노트북과 집에 있는 데스크톱이 뒤엉켜있는 책상에 아이의 손 까지 얹힌다. 키보드를 향해 손과 발을 뻗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방법은 오직 유튜브뿐. 사내 접속 프로그램을 잠시 내리고 유튜브를 클릭해서 엄마 까투리 시즌 2를 플레이한다. 처리해서 넘겨야 할 서류가 눈 앞에 있는데 까투리 4남매에 가려서 손을 댈 수 없다.


그럼 그동안 엄마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우아하게 드립 커피를 내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을까? 육아서나 실용서가 아닌, 철학책을? 당연히 그렇지 않다. 아이가 초토화시키고 간 아침 식사 자리를 정리하고, 모닝 응가를 치우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빨래 통에 넣는다. 아이가 다른 곳에서 저지 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 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한 숨 돌린 채로 드디어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 


“여보~ 나 이제 일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 좀..”


얼굴에 물기가 남은 채로 아이의 세타필 로션을 대충 찍어 바르며 홈 오피스의 문을 열고 아이를 아빠의 무릎에서 떼어 나온다. 질척한 느낌이 얼굴 가득 남아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시작된 오전 육아. 한 시간 동안 그림책을 몇 권이나 읽어 줄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것 같은, ‘엄마 이거! 책!’의 세계로 빠져 든다. 한 권, 두 권 옆에 쌓일 때마다 목이 갈라지는 것 같지만 아이가 좋아하니까, 몸으로 놀아주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계속 읽는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그토록 두려워하는, 신체 놀이 시간이다. 온 집안의 모든 것들을 다 끌고 나와 할 수 있는 몸 놀이를 다 한다. 이불속에 들어가 한쪽 다리로 집을 만든 채 15분 넘게 버티는 일은 역시 쉽지 않다. 너랑 나랑 같이 여기 숨어있으면 아무도 우릴 찾을 수 없어. 술래가 없다니까? 말해봤자 아이는 ‘꼭꼭, 꼭꼭’ 술래잡기를 한다며 그저 웃는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쯤, 남편은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슬슬 거실로 나와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이는 몇 달 만의 재회처럼 아빠를 반갑게 맞이하고, 손을 이끌어 “같이 같이” 놀 자며 새로운 놀잇감을 가져온다. 


“일 다 했어요?”

“아니, 계속해야지.”

“그럼 왜 나왔어요? 먼저 일부터 끝내요. 오전엔 내가 놀어줄 수 있어.”

“아니, 너 힘들까 봐 도와주려고 나왔지.”

“해야 할 일 다 하고, 그다음에 나랑 교대해줘. 그게 날 도와주는 거야.”

“아니, 너 도와주려고 그런 건데..”


남편은 착한 사람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가정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만 주장하거나 윽박지르는 법이 없다. 항상 나를 위해 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종종 ‘아니’라는 말과 함께 삐걱거렸다. 


‘아니, 집 안에 같이 있으면서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는 게 좀 그래. 그래서 도와주려고 잠깐 나온 건데..’ 


남편은 날 도와주고자 근무 중에 잠깐 씩 나와서 아이와 놀아줬다. 하지만 길어봤자 10분, 15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화장실 가기 정도밖에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달랐다.


“난 효율적으로 시간을 나눠서 육아하기를 원해. 집중해서 일을 끝내고 남은 시간에 나랑 교대해줘. 육아 자체가 힘든 게 아니라 내 시간이 없는 게 힘든 거라니까?”


짧은 휴식이 아니라, 셋이 함께 뒹구는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진정 나 홀로 있을 그 시간을 원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려 노력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나는 또다시 설명했다. 


남편은 절대 나쁜 뜻이 없었다. 내가 힘들까 봐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자꾸 방 문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온 것일 뿐. 다만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도움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 


재택근무로 인해 세 명이 함께 있는 시간이 무한정으로 늘어나면서 가정의 질서와 규칙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직장인 남편, 전업주부 부인,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월요일 아침 10시가 되면 철저하게 서로에게 분리되어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다시 만나는 루틴에 이제 겨우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코로나=재택근무로 인해 모든 것이 엉키고 설켰다. 


 혹자는 가족끼리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하던데, 그 혹자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가족의 소중함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제는 나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 찾고 싶은 때라고 말하고 싶다면 배 부른 소리일까. 전업주부 엄마의 숨 쉴 시간과 공간이 한순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코로나와 재택근무가 끝나면 많은 엄마들이 상담과 치료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예약이 다 차서 몇 달을 기다려야 하기 전에 얼른 대기 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려놓아야겠다. 그 상상을 하며 오늘도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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