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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이렇게 커버린 걸까?

2. 우리 엄마 냉장고 3대.

by 브나로마드

3형제는 고무 공장에서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대신에,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서 컸다. 평일에는 할아버지와 공원에 나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할머니의 화려한 화투 솜씨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은 주말에 잠깐 틈을 내어 나를 보러 오곤 했다. 어린 시절 나는 '도대체, 엄마, 아빠는 무슨 일을 하시길래?'라는 생각을 했다기보다, 그냥 그런 건 줄만 알았다.


내가 7살 때 이사를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첫째 형의 담임 선생님 호출로 아버지가 학교에 급하게 찾아오셨다. 아버지는 교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쟤 때문에 학교 다니기 힘들어요" 학생이 꺼이꺼이 울었다.

아버지는 '쟤가 누구길래?' 생각하셨다.


그 학생이 말하는 못된 녀석은 첫째 형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전학을 가야겠다고 다짐하셨다. 3형제를 데리고 와서 한 지붕에서 살게 했다. 뜨거운 물에 찬밥을 말아먹어도 정성스럽게 김치를 올려주시던 할머니. 자전거 바구니에 나를 태우고 마실 나가는 할아버지.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막둥이는 효자라고 자랑하시는 따스운 분들과 떨어지게 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부모님께서 일하시는 고무 공장에 따라갔다. 워셔액을 바닥에 뿌려놓은 것 같은 메케한 냄새, 다리미에 팔을 덴 것보다 뜨거운 롤러, 가까이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를 삼켜버리는 소음 속에서 정신이 어지러웠다. 첫째 형의 이름을 본떠서 만든 공장, 광진테크. 그 당시 형의 나이는 15세였다.


'15년의 시간 동안 부모님은 소음이 가득한 가마솥 안에서 일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오랜 세월을 악착같이 살아온 엄마는 버리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부모님 댁에 놀러 갔을 때, 냉장고가 어느새 3대나 됐다. 무심코 먹은 걸쭉한 두유의 유통기한은 2년이나 지났다. 오래된 것을 버리는 것보다 보관할 냉장고를 새로 들이는 것을 선택하신 걸까? 아니시면, 냉장고의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3형제가 없어져서 그런 걸까? 두 가지 모두 씁쓸한 선택지다. (아니면, 집안일에 관심이 없으시나..?)


유난히 걸쭉했던 두유를 먹으면서, 억울하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긴 부모님을 미워할게 아니다. 흘러가는 젊음을 우리 3형제에게 쏟아부은 것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냉장고 3대에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었더라도, 엄마에게 화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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