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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지 사람의 이직 일기.

2. 만남은 어렵고. 이별은 쉬워 - 첫 번째 마침표.

by 브나로마드

고등학생 때, 나는 공부에 소질 없었던 흔한 '수학 포기자' 중에 한 명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선생님께서도 대학교 진학에 관련해서 깊은 이야기를 건넨 적이 없었다. '무슨 대학교를 가야 할지 보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대학교는 어디지?'를 찾았던 것 같다. 떨리지 않는 수능을 마치고, 신중한 척하며 결정한 진로는 물리치료학과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학교 때 공부는 적성에 딱 맞았다. 4점대 학점과 학과 학생회장도 맡았다.

'오, 나는 물리치료사가 천직이군.' 새삼 감탄하며 졸업했다.


처음엔, 교수님의 추천으로 동문 선배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에 근무했다.

"그동안 이날을 위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지! 드디어 이제 실전이다!!!"

하지만, 젊은 날의 열정과 현실은 달랐다. 언제나 어르신들을 침대에 눕히고, 휠체어로 옮기는 일.


'내가 이러려고 학교를 나온 건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헤어질 핑계'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아리 선배의 제안으로 맞은편 종합병원에 자리를 추천받았다. 1분도 고민하지 않고 이직을 결심했다. 그렇게 10개월 정도 근무했을 때, 새로운 핑계가 생겼다. 토요일 퇴근 시간 5분을 남기고 거구의 중년의 남자가 치료를 요청했다.


최소 30분이 걸리는데, 내심 누군가 "고객님 영업시간이 끝나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주길 기대했다.

어린 날에 눈치만 보던 막내,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없던 소년을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두 퇴근했다. 입을 앙 다물고 괜찮은 척하며, 치료했지만 손은 급해졌다. 결국 그 거구의 중년 남자는 미간을 잔뜩 짓 부린 체 불만을 표현하며, 내 실력을 탓했다. 이상하게도 모진 말을 뱉었던 중년의 남자보다 오히려 회사와 동료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것 같다.


그 사건 이후로 환자가 없는 시간에 노트북을 꺼내 자소서를 썼다. 막상 생각해 보니, 예의가 아니었지만, 그때 내 나이 24세의 철없이 꽃다운 나이였다. 그렇게 다음 해 어떤 업무인지도 몰랐던 보험금 심사 회사에 취직했다. 물리치료사로서의 마침표를 찍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마침표. 그때 내가 거구의 중년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마침표를 찍지 않고 계속 그 일을 했을까?' 돌이켜보면, 칼퇴근을 했더라도, 동료가 남아 있었더라도.. 어떻게든 퇴사를 결정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일하는 공간에는 항상 새로운 변명거리들이 '톡' 하고 튀어나와 퇴사를 마렵게 만들었을 테니.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마침표를 찍고, 난 조금 더 멀리 가려 해

- 쇼미더머니 10. Episode3 베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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