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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n 02. 2024

꽃밭의 주인

노모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아들의 입대를 앞두고 시댁을 찾아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달이 멀다 하게 자주 갔었는데 아이들의 입시 뒷바라지와 나의 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뜸해졌다. 도착하니 남편은 밭에서 직접 키운 쌈채들을 열심히 뜯고 있었고 시어머님은 지팡이를 짚고 그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막둥이 아들이 밭에서 혼자 애쓰는 모습을 안쓰럽게 여기셨을 것이다.


내 시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전형적인 옛날 어머니. 어머니 올해  92세가 되셨다. 내가 시집가던 해 칠순잔치를 했고 다음 해 아이를 낳았다. 큰아들과 어머니는 딱 70살 차이가 난다.



차에서 내려 몇 달 만에 만나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훅 올라왔다. 몇 달 안 뵌 사이 많이도 늙으셨다. 죄송하고 안스럽운 마음이 교차되었다. 눈앞에 아들과 나를 두고도 구분하지 못하시고 소리도 거의 듣지 못하신다.

남편을 등 떠밀어 매주 시댁으로 보내기 시작한 건 나였다. 어머니 연세가 많아질수록 뵐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막내인 남편이 어머니를 더 자주 뵙고 이야기 동무가 되어주었으면 했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는 분이셔서 밭이고, 집이고 예쁜 꽃이 가득하다. 내가 이쁘다고 말씀드리자, 파가서 집에 가 심으라 신다. 활짝 피어 화려함을 뽐내는 꽃과 지팡이를 짚으신 어머니가 묘하게 대비되었다. 사란은 누구나 늘고 언젠가 정해진 그 길로 간다. 내 시어머니는 꽃같이 아름다운 분이셨다. 꽃은 지지만 씨를 뿌려 해가 갈수록 꽃밭이 풍성해진다.

우리 가족 모두는 어머님가 잘 가꾼 풍성해진 꽃밭이다.

좀 더 오래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한다. 아직 어머니 화단에 꽃이 만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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