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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n 09. 2024

똥 치우는 며느리

배신감

22년간 이런 수모는 없었다, 그들만의 비밀을 나에게만 알리지 않았다니…

나는 여태 이 집 식구가 아니었을까?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더 당황스러운 건 아무도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용서할 수 없다.


결혼한 지 22년이 되는 결혼 기념일이다. 마침 시어머님 생신이라 우리 부부는 별 이벤트 없이 시댁으로 향했다.

시어머니는 올해 92세가 되셨다. 장수하시는 중이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자손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남편은 7남매 중 막내아들이라 시댁 형제 중엔 내가 제일 어리다. 한창 이쁨 받을 나이랄까?

식사를 마치고 어머님집이며 밭을 오가며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했다.


때마침 집안에 사람들이 없어 화장실을 가려니 넷째 시누가 안에 있었다.

요즘 화분 키우는 재미에 한참 빠져있는 나를 위해 엄마랑 동갑이신 큰 시누가 허브 화분을 가지고 오셨다. 분양을 마치고 다시 화장실에 가니 바닥에 믈이 엉망이었다.


볼 일이 급했던지라 문제를 해결하고 물을 내리는데 변기가 막혀 내려가지 않는다.

손을 닦고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안된다. 낭패다. 밖에는 시아주버니와 고모부들 까지…

변기 커버를 내리고 연장을 찾았다. 뚫어 뻥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애초에 변기에 맞지 않는 모양의 것이었다.


다시 머리를 굴린다. 밖으로 나가 누가 있는지 살피고 1회용 옷걸이를 가져다 펴 두 번째 시도를 했다. 역시 안된다.

씩씩거리며 욕실을 나오는데 넷째 시누가 나를 보며 웃는다.

변기 막혔지?”

알고 계셨어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부화가 치밀었다.

창고와 주방을 오가며 최선의 무기를 찾는다. 고무장갑…

이런 나를 보더니 시누네 부부가 깔깔 거리며 웃다 뒤로 넘어간다.

하…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끼고…

드디어 물이 빠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오는데 그 집 식구들은 둘러앉아 과일을 먹다 말고 나를 보며 박장대소한다.

손 넣었어? 으~~~“

배신자들.

저도 우리 집에 엄마 있어요. 다 이를 거예요!" 소리를 바락 지르자 큰 시누가 수박을 건네며 웃는다.

"수고했어.”

“똥이나 치우라고 시집살이시켜서 저 이제 안 올 거예요.”

한창 이쁨 받을 나이라 이뻐해 주신다.

나는 시엄니 생신이라 맥시 롱 스커트를 었다. 치마끝단이 축축하다.

이 물은 무슨 물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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