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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Apr 12. 2024

라이더

우리를 먹고 살리는 힘에 대하여

봄볕이었다. 분명.


찬기운이 언제 물러갔는지도 모르게, 봄이라는 계절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가기라도 한듯 또다시 생경한 봄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그러고보니 길가에 서있는 나무들의 가지끝이 통통하다. 움틀 준비가 한창인, 혹독한 겨울을 지난 것들의 환희의 시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걸 알게된다. 봄볕이라 마음놓 얇은 옷을 걸치고 나갔다가 덜덜 떨다 온적이 있었기에 혹시 모를 추위를 대비하여 나는 옷을 퍽 겹겹이 입는다. 아직 봄의 한중간이라 인식하지 못한 나의 옷차림은 겨울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완전한 봄 속으로 들어와있음을 알게된 어떤날이었다. 겉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얼굴로 내려쬐는 햇볕이 이마의 땀구멍을 여는 감각이 봄을 선명히 일깨운다.


 오후 네시를 지나는 한산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걸음에는 종종거림이 없다. 따듯한 온기는 사람들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다. 바람에 섞여있는 봄볕을 곁에 두고 노닐듯 그렇게 한걸음씩 사뿐거리는 거리위에 섞여들어간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으나, 충분한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너지 못한 초록색의 점멸등이 마치 나뭇가지의 여린잎을 틔워내는 박동같이 느껴져 나는 뛰지않고 다음 신호을 기다린다. 차로에 좌회전 신호가 켜지고 도로 위에는 직진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서있다. 그리고 차들의 맨 앞줄에 라이더가 오토바이를 멈춰놓고 함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형인가 싶을 갈색의 복실복실한 무언가가 몸으로 종알거리고 있었다. 아이구나, 다섯살 여섯살쯤 되었을까? 검은 두툼한 패딩을 입은 남자가 아이의 겉옷의 지퍼를 끝까지 올려주고 귀가 달린 후드모자를 씌워준다.  오늘같이 따듯한 날에, 오늘처럼 봄볕이 내려쬐는 날과 상관없이, 그들이 겪고있는 계절은 분명한 겨울이었다. 아이의 옷을 단단히 여미는 아빠가 겪었을 겨울을 헤아려본다. 오늘같이 온화하기까지한 봄볕에도 옷틈 사이로 파고들었을 시린 한기에 대한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르지. 계절을 온몸으로 겪어내야했을 그들에겐, 온화한 봄, 참을만한 추위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해본다.


 아이는 고개를 뒤로젖혀 아빠를 보고 작은 입을 종알거리다 까르르 웃어재낀다. 헬멧은 아빠 얼굴의 웃음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문득, 어쩌다 어린 아이를 태우고 배달을 함께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였겠지, 지금은 오후 네시니까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녀와서 보통은 집에서 보낼 시간이니까.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가 없었다면 아이를 태우고서라도 일을 해야하는 그런 사정이 있었겠지 추측하여본다. 등뒤에는 누군가를 먹일 따듯한 음식을 싣고서, 앞으로는 그의 허기와 노곤함을 사라지게하는 아이를 안고서 라이더는 초록의 신호 속으로 달려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먹고 먹이는 일, 허기와 허기를 채우는 일, 사는것과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왜일까. 나는 횡단보도를 걸으며 조금 울어내야 했다. 공허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에 대하여,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였다. 오후의 찬란한 봄볕에 눈이 부셨기에 조금더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퇴근길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를 비집고 바삐 움직이는 라이더들을 보면서, 그들은 언제 밥을 먹을까 생각하곤 했다. 모두가 식사를 하는 시간에 가장 바쁜 그들은 먼저 이른 식사를 할지, 늦은 식사를 할지에 대해서. 아침, 점심, 저녁식사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그들이 부지런히 날라주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한끼처럼 그들을 살게하는 것에 대하여 퍽 궁금했다.


 ‘딩동’ 소리와 함께 문앞에 놓인 따듯한 한끼의 식사가 달래줄 누군가의 허기의 가치로움을 생각한다. 허기진 배를 따듯하고 묵직한 것들로 채우고나면 그냥 세상의 일들이 조금은 괜찮아 보이는 것처럼, 어쩌면 라이더들은 우리들의 삶에 조금의 온기와, 조금의 괜찮음을 데려다주는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https://www.thepublic.kr/news/articleViewAmp.html?idxno=20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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