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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저장소 Jul 25. 2021

500만 원이었다. 나의 전 재산은,

500 원이었다. 내가 가진   재산.  돈을 모으는 데는 2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돈을 쓰는 데는 3개월밖에  걸렸다.

 

군대에서 정말 많은 계획을 세웠다. 전역하고 나면, 일단 다 도전해보자고. 그렇게 해서 복학하기 전까지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해보겠다고.

 

군대에서 모아둔 돈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돈을 한 학기만 쓰이고 끝나는 소모성 돈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이 500만 원을 활용해 앞으로 계속 돈을 창출해내고 싶었다.

 

꿈만 같던 전역을 하게 되고,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모험의 시작이었지만,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평생을 학생으로 지내다가 갓 전역하고 온 23살짜리가 난생 처음 만져보는 500만 원을 사업에 올인하겠다는 것이.

 

나름대로 기대가 크긴 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리면 이 500만 원은 몇천만 원대로 변해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시작했다. 2021년 4월 25일 전역 후, 통장을 들고 광주와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 사업을 위한 길을 찾아 떠났다. 조금 떨리고 무섭긴 했다. 당장 인터넷 쇼핑할 때도 배송비 몇천 원 붙는 게 아까워서 사지 않는 나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500만 원을 투자한다는 것이. 잘못하면 그냥 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냥 다 내려놓고 이 돈으로 옷도 사고, 친구들이랑 여행도 가며 놀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 들 때마다 오히려 더 폭주하듯 달려갔다. 내 계획의 화려한 마지막을 꼭 보고 싶었으니까.

 

이제 전역한 지 3개월이 지났다. 폭주하다가 쓰러질 때쯤이면 쓰러진 대로 폭주해나갔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혼자서 책을 출간했고, 그림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일러스트페어에 작가로 참여했고, 나의 캐릭터를 상품화시켰고, 쇼핑몰을 시작하며, 최근 들어 영상 편집을 공부하며 유튜브도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골에서 농장일을 시작하며, 앞으로 가족끼리 살 집을 직접 짓고 있기도 하다. 그 사이에 대외활동도 하는 등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나열한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정말 폭주하듯 살았다. 전역하고 나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모든 걸 다 참아가며 하루에 5시간씩 자며 일을 했으니까.

 

이 모든 게 3개월 안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부산에서 일러스트레이션페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남은 돈이 없다. 찬란하게 빛날 것만 같았던 계획은 이렇게 끝을 낸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께 했던 말은, “나 주문 들어와서 택배 보내야 되는데, 택배비가 없어서 4000원만 줄 수 있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0만 원이나 갖고 있었던 내가, 이젠 단돈 4,000원도 없는 상황이다.

 

 

3개월 동안 미친 듯이 달려온 모험은 이렇게 끝났다. 다소 쓴 결말이다. 계획은 2년 동안 세웠지만, 실행에 옮긴 지 3개월 후 이 모험은 세상이 나에게 길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실 속마음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깨달은 건, 만약 내가 바로 성공했다면, 누구나 다 성공했으리라는 것. 어쩌면 지금 나의 상황이 당연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부딪혔다는 것.

 

쓴맛은 봤지만, 그렇다고 방황하진 않을 것이다. 방황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일단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야겠다. 세상에 단맛만 보는 사업가가 어디 있나. 사업은 쓴맛도 볼 줄 알아야지. 쓴맛이 싫었다면 애당초 사업에 발을 디디지도 않았을 테니까. 나는 사업가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사업가. 성공한 사업가일지, 실패한 사업가일지는 이번 연도가 끝나기 전까지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뭐가 됐든 나는 전자가 되기 위해 일어섰다.

 

올해의 나는 무엇일 지에 대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재작년에 나는 블로거였다.

작년에 나는 작가였다.

올해의 나는 무엇일까?“

 

한 줄을 덧붙여야겠다.

 

올해의 나는 사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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