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정저장소 Oct 17. 2021

우리의 목적지는 사라졌던 적이 없다

결국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글과 그림, 그리고 나의 사업으로 돈을 벌며 생활하려는 계획들은 처참히 무너지게 됐고, 나는 도망치듯 회사를 택하게 됐다.


취직을 했다. 회사를 길게 바라본 것은 아니었고, 아무런 스펙도 없었던지라 진입장벽이 다소 낮은 곳에 입사했다. 어쨌거나 힘든 시기에 취직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눈에 밟히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회사를 택함으로써, 꿈이 아닌 현실을 마주 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역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엔 무리가 있었나보다. 내 꿈이 어긋나게 됐으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계획 사이에 경유지가 생겼을 뿐이지 목적지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설정하면, 내비게이션은 최단 길을 알려준다. 그 길만 따라간다면 목적지에 매우 쉽고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길이 헷갈려서 경로를 이탈할 수도 있고, 기름이 부족해 주유소를 찾아갈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즉, 최단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못 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목적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길을 잃었다고 할지라도 내비게이션은 지금 있는 위치에서부터 다시 경로를 탐색함으로써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


마찬가지다.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해놨다. 그리고 내가 그 길을 향해 갈 수 있는 나름의 최단 루트를 짰다. 그 길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연료가 떨어져서 주유소에도 들리고, 배고파서 식당에서 밥도 먹고 있는 중이다. 내가 잠시 길을 틀었다고 해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목적지는 존재했다.


경유지에 들렸다고 목적지가 사라졌다고 착각하지 말자.


우리의 목적지는 사라졌던 적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마침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