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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반 Aug 14. 2020

영화 <블루 아워>, 모든 게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시간



<신문기자> 이전에 <블루 아워>가 있었다.

배우 심은경이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 최연소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심은경의 일본 활동 첫 작품은 <신문기자>가 아니다. 유난히 더운 2018년 여름에 촬영한 영화 <블루 아워>가 그의 첫 작품이다. <블루 아워>는 하코타 유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한국에서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유명한 일본 배우 카호가 주인공 스나다를 맡았다. 심은경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스나다의 친구 기요우라를 연기했다.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어른의 이야기

CF 감독 스나다는 여자로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무기력함 속에서 권태로운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기요우라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불행하진 않았지만 행복하지도 않았기에, 스나다에게 집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어딘가 수상쩍은 오빠는 불편하고 하는 일 없이 누워있는 아빠는 한심하며, 악착같은 엄마는 답답하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모습이지만 보고 있자니 짜증나고 화가 난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헷갈리는 시간, 블루 아워

해가 뜨는 건지, 지는 건지 모를 어슴푸레한 하늘과 도깨비라도 나올 듯 고요한 사방. 아침인지 저녁인지 조차 알 수 없이 모든 게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시간. 스나다는 지금 블루 아워를 지나고 있다. 여자 PD로서 결혼 후 애를 낳고 사라졌던 선배들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고 셋째가 생겼다며 축하 받는 남자 동료는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조금씩 삐걱거리는 남편과의 관계에 무료함을 느끼고 새로운 사랑을 찾지만 동료이자 유부남인 남자와의 사랑은 모호하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가족과의 관계 역시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찾아서

스나다의 여행에서 자발적인 것은 없다. 모두 기요우라에 의해 수동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스나다는 마치 누군가 그래 주기를 바라왔던 것처럼 일말의 거부감 없이 기요우라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런 작은 도움이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스나다의 고향에서 기요우라는 이질적인 존재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비현실적으로 현실적인 기요우라의 모습이 스나다의 블루 아워를 한층 더 부각시킨다.


스나다를 자꾸만 떠미는 기요우라는 스나다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블루 아워를 뚫고 달려 나가던 그 시절의 자신이 보낸 도움의 손길이다. 그래서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흘렸던 스나다의 눈물은 잊고 지낸 과거의 자신을 위한 미안함이자 마침내 블루 아워를 지난 현재의 자신을 위한 위로이며, 앞으로의 자신을 위한 희망의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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