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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긍 Nov 16. 2024

주니어 PM, 3년차에 첫 이직

저 이직해요

01. 이직을 결심하다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을 '빨리' 배우려면 이제는 팀 바깥에서도 기회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3년차를 앞두고 제가 했던 고민은, 실무 잘 하는 PM이 아니라 진짜 일을 이끌 줄 아는 PM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였습니다. 저는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제 일의 영향력이 제품이나 시장에 즉시 반영되면서 큰 책임감을 매니징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비슷한 규모의 팀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은데요. 팀의 규모가 작을수록 리더의 역할을 기대받는 시점은 더 앞당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태스크 단위의 문제 정의나 기획서 관리를 넘어서, 제품 로드맵을 짜는 진짜 PM 이 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더 해봐야 하는 경험이 무엇인지 떠올리다가 > 나는 왜 PM이 되었는가 톺아보다가> 나는 어떤 제품을 만들고 싶은지를 생각하다가 > ... > 저~ 멀리까지 생각을 넓히다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저에게 직업은 정말로 중요한 자아실현의 수단입니다. 그래서 '내 직업을 통해 내가 바라는 세상에 가까워지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가?'가 직업 만족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요. 제가 바라는 세상의 키워드는 '풍요로움'입니다. 풍요로움을 여러 관점에서 정의할 수 있을텐데요. 저는 '살아야 해서, 생존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해서' 하는 선택이 많은 상태를 풍요로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보따리를 다 풀어놓기에는 지면이 좁고 저의 글솜씨가 부족하여 중략합니다.) 제가 바라는 그런 상태를 제 직업과 연결하기 위해 제품 단으로 내려와 생각하다보니- 고관여 서비스에 늘 관심이 많았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존에 꼭 필요하면 고민을 길게 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내 취향도 고려해야 하고, '그냥 좋아서' 하는 것에 이 정도 돈을 써도 되는지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야 하니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게 고관여 서비스의 특징입니다.


제가 어떤 시장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이 시점에 꼭 필요한 깨달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고 싶은 팀을 찾는 기준 중 하나가 되었거든요. 더불어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일하고 싶은지 뚜렷해지니, 내가 몸 담고 있는 팀의 도메인이 꼭 고관여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일의 동력을 쉽게 잃지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02. 이직 준비 과정에서 얻은 것


(1) 경험 정리하기

주니어 경력 PM 채용 공고를 쭉 보면서 우대 역량 공통 키워드를 뽑고 그 중에 제가 자신 있는 역량과의 교집합을 찾아서 몇 가지 키워드를 추렸습니다. 그리고 그 역량을 증명할 경험 소재를 찾았습니다. 1년차 때 주 단위로 작성했던 회고도 살펴보고, 반기에 한번씩 받았던 (동료들이 써주는) 그로스 리뷰 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고민의 깊이를 드러낼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는데요. 바로 피그마부터 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설령 워드로 포트폴리오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문제 발견부터 정의, 가설 검증, 이터레이션 과정을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제작 시간의 70% 정도는 경험별 내용 정리에만 집중했습니다.


무척 만들기 싫었던(?) 터라 스스로 이런 약속을 하기도 했다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활용해서 내 일을 돌아보는 과정이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쉽게 타협하지 않고 끈기 있게 무언가를 해낸 경험을 돌아보며 뿌듯하기도 했고 / 일의 시작과 끝을 한번에 돌아보니 '이건 이렇게 할 걸' 싶은 것이 있어 후회가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성은_포트폴리오.pdf' 파일을 한 손에 든든히 얻어낸 것도 큰 성과였지만 내 일과 고민을 돌아보는 과정 자체도 참 소중했습니다.



(2) 내 가치관 돌아보기

총 3곳의 회사에서 8번의 면접을 봤습니다. 보통은 1차 면접에서 제가 지원한 포지션으로 일하고 계시는 실무자 분과 업무 역량이나 성과와 관련된 질문을 주고받고, 그 후 면접에서는 가치관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것, 컬쳐핏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사실 2차 면접을 준비하는 게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질문의 범위가 워낙 넓고, 가정형 질문도 많기 때문에- 인터뷰 전 '준비되었다'라는 자기 확신을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직을 준비하고 경험한 첫 2차 면접에서 너무 빠르게 답변을 시작하려고 하는 조바심 때문에 제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질문들을 톺아보면 거의 다 평소에 했던 생각들과 충분히 연결지을 수 있는 것이라 더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평소에 든 생각들을 그 때 그 때 기록해두기로 했고 매달 2편씩 쓰기로 (혼자) 약속한 브런치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기록까지 할 필요 있을까?'' 싶었던 사소한 에피소드도 저에게 영감을 주는 경우가 있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일터에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는 것 외에도 많다는 걸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목격했던 동료의 용기있는 결정이나, ABT 잘못 세팅해서 지표 망가지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바로 수정해서 재배포하느라 진땀 흘렸던 하루 등 기억 창고에서 꺼내니 한 알 한 알 나를 키운 기억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내 나름의 직업관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2년 전에는 '나쁜 PM은 어떤 PM일까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습니다. 딱히 내 생각이랄 게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고 대강 상상하면서 적당한 답변만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의 맥락을 소화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PM'은 PM으로서 좋은 직업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제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이 답변도 언젠가 바뀔 수 있고, 누군가의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한 것인 만큼 이제는 '면접관도 내 생각과 같을까, 이 답변을 마음에 들어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소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모습이 예전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를 하든, 돈을 벌든, 그냥 통근길을 즐기기 위해서든 여하튼 나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인데 - 앞으로는 면접 준비를 할 일이 없어도 나의 직업관에 내가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자주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PM의 관점에 빠르게 몰입하는 경험 익히기

이직을 준비하면서 봤던 첫 1차 면접을 망쳤습니다. '이 팀에 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막혔습니다. 면접 기본 질문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준비한 답변은 있었지만 제대로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사실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면접 때 자기소개랑 지원동기만 답변을 구체적으로 준비해가고 나머지는 머릿 속에 넣어둔 경험 소재에서 슥슥 꺼내서 면접 맥락에 맞게 답변하는 걸 제 나름의 면접 스타일로 체화해나가고 있는데요, '과거의 나'에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데- '이 팀에 올 나'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특히 PM이라면 제품 제작 프로세스를 리드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스쿼드 내 타 구성원보다 입사 시기가 늦어도, 제품 로드맵 관점에서는 적어도 반 발짝 이상 앞에 있어야 하는데 팀과 제품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면접에 참여했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면접부터는 새로운 팀에서 PM으로 일하게 될 스스로를 생각해보면서 제 관점에서 제품을 해석한 후에 면접에 참여했습니다. 제품을 해석하기 위해 면접 질문의 의도부터 생각해봤는데요. 면접자에게 제품 로드맵이나 팀의 다음 스텝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의 의도는, 실제로 쓸 만한 계획을 내놓을 것인지는 보기 위함보다는 PM의 관점에서 제품을 볼 줄 아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기업 조사 방법은 모두 패스하고, 아래의 요소들만 집중하되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제 해석을 더해갔습니다.


<사업과 제품의 관계>

- 수익 모델 (이 팀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아야 제품이 사업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 지금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음. 수익 모델 파악에 메인 고객 이해도 포함됨)

- 수익 모델 강화를 위해 제품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 (Objective)

-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제품 지표 (북극성 지표)

- 북극성 지표의 선행 요인이 되는 제품 지표 (Key Results)


<제품의 과제>

- 퍼널별 핵심 지표

- 퍼널별 사용자 니즈

- 퍼널별 (제품팀이 풀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




03. 고마운 동료들과의 이별


그렇게, 어찌저찌 준비를 하고 이직처를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팀장님과의 면담을 마무리한 후, 가까이서 실무를 보는 동료들에게 차례차례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쉬움과 축하가 오가는 대화 속에서-  이렇게나 다정하고 유능한 동료들을 많이 만나뵈어 성취도 실패도 같이 경험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 두고두고 귀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퇴사 소식을 전한 후, 개발자 동료가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포토카드를 사서 슬쩍 전달해주셨을 때 정말로 눈물을 훔쳤습니다...ㅋㅋ)


PM으로서의 첫 커리어를, 서로 서포트하는 동료들이 있는 팀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에도 감사했고 커리어를 떠나 20대 중반에 무언가에 정말 열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음에도 무척 감사했습니다.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이직 과정이 마무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팀명 '팀스파르타'에서 영감을 얻은 우리 스쿼드에서 만들어주신 전역모. 처음 받아봐요.. (당연)


퇴사일이 가까워질수록 '나 어떡해'를 들으며 오열(?)한 동료 PM과 나 + 마지막 퇴근길 배웅하러 나와주신 동료들


팀 동료로서의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저도 동료들에게 종종 생각나는 PM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쌓았던 기억을 자양분 삼아 다음 팀에서도 다정하고! 유능한! 아주 든든한! 동료가 되어볼게요. (울컥)






이제 새로 배울 것들이 많을텐데요. 그에 따라 브런치에 정리하는 글의 성격에도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냥저냥 기획서 잘 쓰고 제작과정 관리할 수 있는 PM이 아니라 제품 로드맵을 만들 수 있는 PM/PO가 되기 위한 여정을 담아보겠습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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