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긍 Dec 15. 2024

연말 회고를 빙자한 드라이브 탐험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야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01. 인생에는 유치한 것이 없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야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황석영, 몰개월의 새 (1976)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몰개월의 새'에서 가장 자주 곱씹어보는 문장입니다. 소설 속 '나'가 별 것 없던 그 날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한 문장이었거든요. 필사도 여러 번 했던 터라 문장 자체가 좋아진 것도 있습니다. 10대 때는 이 문장을 지향점처럼 떠올렸다면 요새는 조금씩 이 문장이 피부에 와닿는 감사한 경험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별 생각 없이 우연히, 혹은 그냥 마음이 가서 시작했던 것들이 내가 나를 알아가는 데에 그 누구의 조언보다도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직업인으로서의 자아를 넓혀 나가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PM이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던 때에 했으니 당연히 좋은 PM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는 전혀 무관한, 아주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한 일들인데 돌아보니 직업관 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던 경험들이 많습니다. 하여 오늘은 연말 특유의 분위기에 취해(?) 드라이브 속 과거 사진들로 추억 여행을 하다 발견한 저의 '유치하지 않은' 경험들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02. 영화를 좋아하는 것


저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영화 속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만 몰입하는 느낌이 좋아서, 집에서 혼자 보거나 영화관을 가도 혼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를 막 많이 보기 시작한 대학생 때에는 영화보다도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가 특히 돈이 없어 시간으로 돈을 채우던 때였거든요. (급 고백) 그래서 2시간, 3시간 씩 그 어떤 재화 소득도 없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고-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장르도 특별히 가리지 않고 보았어요. 호러 단편 모음 상영관에 들어가는 것도 그 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허허.


DVD 방에서 영화를 보면서 첫 차를 기다렸다 + 모두가 조금씩 부끄러워했지만 얼레벌레 결정되었던 동아리 소개 문구


영화 보는 것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 저는 왓챠피디아 (https://pedia.watcha.com/ko-KR) 의 오랜 이용자인데요. 이 곳에서 다른 이용자들이 남긴 평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직 안 본 영화이거나 아마 앞으로도 안 볼 것 같은 영화에 대해서도 평 자체가 좋아서 '좋아요'를 눌러두고 오래 간직하기도 합니다. 나는 놓쳤던 대사 간의 행간에 감동 받는 사람들, 명곡이 그렇듯 명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사람들 의 글을 읽습니다. 평의 댓글도 읽습니다. 서로의 다름에 대해 유독 관대한 그 현장이 좋아 오래 머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상대의 감상을 본인의 감상과 같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영화 보는 게 PM으로서 일하는 데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막막한 상황이나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에서 조금 더 유연한 마음 가짐을 갖게 된 데에는 분명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러닝타임 내내 꾹 참고 봤는데 결국 싫어서 박한 별점을 주게 되는 영화가 있는데요. 시간을 버렸다는 분노(?)보다는 '아하 나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구만~' 하고 넘기게 됩니다. 기승전결을 다 봐야만 감상을 얻을 수 있으니 미리 피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데, 자주 연습해두면 유용한 근육이 됩니다. 일하다가도, 살다가도 막막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일단 해결해보다가도 영 안되겠으면 별점 0.5점짜리 영화 본 셈 치는 것이지요. 태생부터 쿨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못한 제 성격에 의외의 구원이 된 생활 근육입니다.


도쿄 진보초 영화관에서 '미친 과실 (1956)' 이라는 영화를 봤다. 대사의 절반 정도만 겨우 이해해도 생활 근육 얻는 데에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03. 공공디자인 공부에 깔짝거린 것


근사한 표현을 찾다가 결국 '깔짝'이라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정말 깔짝거렸기 때문입니다.(?) 때는 2017년,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친구들과 각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진 후에- 계속 만날 구실을 찾으려면 뭐라도 같이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졸업하고나면 학교 친구들을 다시 보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선배들 얘기에 약간 겁을 먹은 상태였습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전공'의 의미가 남달랐던 터라 각자의 전공 (미학, 행정학, 경영학, 아트앤테크놀로지) 간의 교집합을 이리저리 조합해보다가 공공디자인 을 같이 공부해보자는, 누가 짜준 것처럼 너무 건전해서 조금 웃긴 (ㅋㅋㅋ) 제안이 오가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자주 보려고 시작했던 터라 대부분의 공부는 오프라인으로 했습니다. 둘은 강북, 둘은 강남 쪽으로 구역을 나눠서 일단 걸어다니면서 벤치, 가로등, 게시판 등 대표적인 공공시설물 사진도 찍고 어디에 뭐가 밀집되어 있는지 파악하기도 했고 / 혼자서는 갈 일 없을 건축 비엔날레도 가고 / 그러다 진짜 궁금해져서 도시공학과 교수님이 계시는 대학을 찾아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서 인터뷰도 다녀왔습니다.


겨울 도시건축 비엔날레 / 여름 거리 탐방 (젤리슈즈 신고 4시간 걸어서 지친 상태)


전원 타 대학이었던 우리의 질문에 언제나 진심으로 답해주셨던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유석연 교수님


그냥 바쁘게 걷던 거리를 '여기는 벤치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 '여기는 휠체어 이동이 용이한가'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서 난데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둘러보며 걷고, 같이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저희만 보는 활동 포트폴리오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1년 이상 하다가 - 해외 탐방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기업의 CSR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공공디자인 선진국인 네덜란드 탐방을 10일 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가서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했다는 육교, 어린이 방문객을 위해 모서리를 특별히 더 둥글게 제작한 책상이 가득한 도서관, 거주자들 간 네트워킹에 초점을 맞춘 공동 주거 시설 등을 직접 눈에 담으면서 여러 분들과의 인터뷰도 수행했습니다.


네덜란드 3개 도시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나려고 일단 시작해서 열심히 걸어다니고 그러다 조금씩, 진짜로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들을 알기 위해 질문하다가 생긴 놀랍고 감사한 경험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네덜란드에 다녀온 이후 저는 공공디자인에 대해 좀 더 공부하다가 UX에 관심을 갖게 되고 > UX 리서처가 되어야겠다 마음 먹고 HCI를 배우고 싶어서 관련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데이터 사이언스 복수 전공을 시작하고 > 졸업 전 단기 계약직으로 IT 회사 데이터 분석 지원 포지션으로 들어갔다가 기획자 업무를 보게 되고 > 나도 저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 ... > PM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같이 갔던 친구 중 한 명은 네덜란드에 석사를 가서 지금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저를 포함해 4명의 친구들 중 공공디자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길을 선택한 사람은 없지만, 잘 모르는 걸 단순하게나마 일단 시작해본 경험 + 그게 쌓여서 우연하게 생긴 기회들 을 자주 돌아보곤 합니다. 계획을 세우고 지켜나가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계획이 아니라 기회를 따라가는 게 더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배우게 해준 아주 귀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일할 때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정해진 백로그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금 우리 제품이 잡아야 하는 기회가 무엇인지 보고 / 기회를 잡기 위해 뭐라도 시작해보는 태도가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억지 연결이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연말에는 우리 모두 회고 중독이잖아요 껄껄)




04.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


대학생 때 학교 근처 퓨전 중식당에서 1년 4개월 동안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저는 스시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학교 앞 회전초밥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밥으로 스시를 준다기에 지원했는데 연락이 없어 급한대로 옆 중식당에도 면접을 보러 갔다가 얼결에 시작했습니다. 80-90년대 홍콩 영화 포스터가 잔뜩 붙어있고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밖이 환하든 어둡든 가게 안은 패브릭 커튼을 통과한 붉은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습니다. 제가 취향이 있는 걸 동경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안 것이 그 즈음인 것 같습니다.


학교 강의를 마치고 가게에 와서 테이블을 깨끗이 닦고 물병을 채워두면서 무언가를 정갈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그러면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까지 10분 정도 남는데 그 동안 사장님, 주방 언니 오빠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어요. 주제가 잘 기억나지도 않는 소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인기가 많은 가게였던 터라, 영업이 재개되면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정신없이 하루가 끝났습니다.


1번 테이블엔 사장님 지인 분들이 자주 오셨습니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졸업해서 어디에서 무얼 하며 지낸다-라고 소개 받는 분들이 오시면 먼 얘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게에 놀러갔다가 '아 그 때 봤던 분들도 이런 마음으로 왔었구나!' 싶더라구요. 20대 초반에 이 곳에서 귀한 대접을 주고 받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던 게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게에 온 전화를 냅다 '여보세요?'라고 받거나 서빙 나가야 할 요리를 누락하거나 등등 셀프 꿀밤 먹여야 하는 잘못을 한 적도 있고 그러면 당연히 정정도 해주셨어요. 귀한 대접이 오냐오냐 가 아니라 존중 이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구태여 잘못을 늘여놓아봅니다.


가게 곳곳에 붙어있는 우리들 사진 / 급성 장염으로 퇴원하고 돌아온 주의 저녁 식사 때 시켜주셨던 흑임자 삼계탕


나를 귀한 사람으로 존중해주는 곳의 '잘 됨'을 진심으로 바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구나 싶었어요. 일이든 모임이든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가 될 것 같아서 함께 하게 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상대를 귀하게 대접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람 귀하게 대해라, 라는 말을 책 밖에서 제대로 이해한 경험이어서 참으로 소중해요. 직업인의 자아에 묻혀 있을 때 잊기 쉬운 것인데, 새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하루 전인 오늘 다시 떠올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글은 2024년의 마지막 브런치 입니다. 올해 초에 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고민되면 그만 두고 다른 것을 찾아보는 선택을 자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민만큼이나 재미도 컸거든요. 그래서 그만 두는 대신 일단 뭐라도 기록을 남겨보자 싶었습니다. 헤맨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 자기 확신이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래서 '달에 두 편씩 내 직업에 대해 글 쓰기'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것도 못할 것 같으면 그 때 그만 둬도 늦지 않다, 라는 혼자만의 숙연한 약속을 했는데요. 이번 글이 24번째 글입니다.


중간에 정말 쓰기 싫었던 적도 있고, 코로나로 인해 생전 처음 느껴본 두통에 눈을 거의 반 쯤 감고 글을 썼던 적도 있고- 아주 쉽지만은 않았지만 실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막상 해보니 별 것 아니었습니다. 허허. 주제 고민 너무 오래 하지 않기 / 퇴고하지 않기 / 부끄러우면 다시 읽지 않기 등 발행에 의의를 두고 작은 습관들을 만들어나간 한 해였습니다. 내년에는 한 달에 한 편씩 글을 쓰고 직업생활을 기본 주제로 하되 좀 더 다양한 주제들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무작정 직진만 하다보면 막막한 시간들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재정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 해의 개념이 반갑고 좋습니다.


새로 다가올 해에 몸 마음 모두 더욱 안녕히 잘 지내시기를 바라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