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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볼 브리야 Aug 23. 2021

그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어제와 같을 순 없지

Algún día te mires y veas lo que veo yo

이제는 마이떼한테 문자를 보내기 전에 스페인 시차를 생각하고 연락해야 한다. 8월 5일, 마이떼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나보다 키가 한참 큰 마이떼는 차에 올라타기 전에 나를 꼭 끌어안더니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네가 원하던 일을 하게 되어서 정말 기뻐. 너랑 여기 있었던 시간들을 잊지 못할 거야. 너는 큰 사람이고, 너랑 함께 지내며 행복했어.


마이떼는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아주 꼭 끌어안았고, 나 또한 한동안은 이 아이를 못 본다는 상실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이떼가 없으면 누구랑 바보 같은 일을 하면서 웃고 떠들지. 누구랑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고, 바보 같은 농담에 깔깔대면서 배를 잡고 주저앉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영화를 보며 주인공이 한 대부분의 일을 마이떼와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풀테펙 공원 자전거로 다녀오기, 센트로 예술의 궁전 보기, 소칼로 다녀오기, 피라미드 보기, 마리아치와 함께 노래 부르기, 로마 거닐기 등 주말 혹은 평일 오후의 일상이었다.  


주말이면 우리는 로마에 있는 피자집에 가서 각자 피자 한 판과 맥주 한 병씩을 시켜 먹었다. 하루는 종업원이 주방에서 우리 중 누가 먼저 한 판을 끝내는지 내기를 했다고 알려주자, 마이떼는 피자를 여러 개 겹치는 수를 써 금방 끝내고는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이겼다는 의기양양한 얼굴이다. 나는 마이떼에게 너랑 있을 때만 이렇게 먹는다고 말했고, 마이떼도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애랑 데이트할 때는 두 조각만 먹어도 배부르다고 답했다.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나는 마이떼가 손톱을 물어뜯을 때마다 쓰읍-을 외치며 주의를 줬다. 마이떼, 손톱 밑에 얼마나 많은 세균이 있는지 알아? 그리고 지금 코로나도 있는데 더욱 조심해야지.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마이떼는 손톱을 물어뜯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입에서 떼내며 아무 일 없는 체 했다.


식재료를 사두고 금방 까먹는 마이떼에게, “아스파라거스 언제 먹을 거야? 냉동실에 있는 연어랑 같이 요리해줄까?” 하고 저녁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마이떼는 위아래로 남자 형제가 있는 털털한 아이였고, 나는 사 남매 중 첫째라 통제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런 성격적 결함이 마이떼랑 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마이떼가 떠나기 얼마 전, 거나한 저녁을 먹고 평소처럼 디저트를 먹으러 파타고니아로 향했다. 아르헨티나 지역명을 딴 그곳에서는 사발 크기의 초코라떼를 팔았다. 따뜻한 우유에 큰 초콜릿 조각을 손으로 부셔 넣고 몇 번 저으면 진한 초코라떼가 완성된다. 비가 자주 쏟아지는 멕시코시티에서 우리는 매번 흠뻑 젖었고, 달달 떨면서도 그 달콤한 음료를 마시며 몸을 데웠다.


특히 그날은 배가 부르니까(일본 음식점에서 맥주 한 병에 라멘과 롤을 가득 먹었다) 알파홀을 한 개만 시켜서 나눠먹기로 했다. 장난치려고 일부러 작은 조각을 마이떼에게 주는 시늉을 하자, 마이떼는 웃으면서 “나는 너가 디저트 자를 때부터 알고 있었어. 더 큰 조각을 나한테 줄 거라는걸. 너랑 살면서 나는 어른스러워질 수가 없었어. 너는 항상 이랬으니까” 하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둘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같이 성장했다. 예민하고 날선 성격은 둥글둥글하고 솔직한 마이떼와 있으며 조금씩 다듬어졌다. 볕이 좋은 날이면 같이 옥상에 올라가 햇볕을 쬐며 낮잠을 자고, 어떤 하루 끝에는 맥주 한 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일요일 아침으로 추로스를 초코라떼에 찍어 먹고, 새해 첫날에는 빈 필하모닉 공연을 보며 지휘자를 따라 손뼉을 치며 매우 행복해하는 등 일상을 풍부하게 살아가는 법은 마이떼한테 배웠다.


나는 가끔 마이떼가 늦는 날이면 불을 켜놓고 잠들었고, 그럼 마이떼는 밤늦게 들어와 불을 꺼주고 갔다. 쌀쌀한 어느 날에는 내 방에 슬금슬금 들어와 전기장판을 차지하고 누워 어리광을 부렸고, 웃을 때 볼이 빵빵해지는 모습이 귀여워 다람쥐라고 부른 후부터는 시리얼 봉지에 그려진 캐릭터를 보면서도 은근한 친밀감을 드러냈다. 마이떼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런 따뜻한 기억을 뒤로하고 나는 또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런 많은 시간을 겪고 어제와 같을 순 없으니까. 어딘가 텅 빈 듯 외로운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그 아이가 알려준 대로 조금은 성장했다 믿으며 우리 서로 자기 앞의 생을 잘 꾸려나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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