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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볼 브리야 Jan 17. 2022

멕시코 모렐리아, 파츠쿠아로, 하니치오, 히로가 여행

Morelia de mis amores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비현실적인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 같았다. 어둑하게 내려앉은 푸르스름한 빛과 어지러이 위치한 전등이 빛을 발하자 한 번도 경험 못한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길 한가운데에는 탭댄스를 추는 남자와 그런 그를 사랑스럽게 보는 연인이 있었고 조금 더 지나자 전등 아래에서 졸업 사진을 찍는 대학생들과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근처에 자리 잡은 시민들은 그들을 쳐다보거나, 서로의 연인 혹은 가족들과 늦저녁의 산책을 즐겼다.   


영화 코코의 배경지가 여기라던데. 아마 나는 마치 축제와도 같았던 죽은 자들의 섬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던 주인공처럼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길을 걸었다. 세상에 정말 아름답다. 이런 곳도 있구나. 거리마다 웃음이 가득 흘러넘치는 이곳에서 딱 한 달만 학생으로 살아보고 싶다. 가끔은 나의 부족한 배움에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또 새로 채우는 기쁨도 느끼면서.  


여러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멕시코에 남은 이유는 예상치 못한 순간 마음 깊숙한 곳을 간질이는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 사는 이유    


어제 이만 오천보 이상을 걸어선 지 골반 쪽이 욱신거린다. 이럴 땐 어떤 요가 동작을 해야 하더라. 기억을 더듬으며 몇 가지 해보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너무 오래 쉬었다. 게다가 슬금슬금 다리를 꼬았던 탓에 상황이 더 나빠졌을 수도.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보고서를 얼추 마무리하고, 이직도 성공하면서 주말이 달게 느껴졌다. 월요일 휴일까지 얻었는데 근교 여행을 안 갈 수가 없었다. 예전 기자 일을 하면서 마약 카르텔과 미초아칸 주가 동시에 거론되는 것을 꽤 자주 접하면서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친구 말로는 이제 다른 곳이 더 위험하단다. 다른 곳에서 싸우느라 미초아칸은 괜찮다고. 그렇다면, 이번엔 미초아칸의 주도인 모렐리아다.  


가끔 여행 가기 전에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아주 좋은 여행을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는데 이번이 그랬다. 프란시스코는 께레타로 센트로도 매우 아름답지만, 모렐리아 센트로가 아주 조금 더 예쁜 것 같다(그는 께레타로 사람이기에 타 도시 평가가 조금 박하다)며 너도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 라고 말했다.  


카풀앱인 블라블라카에서 만난 운전자도 그랬다. 사실 여성 운전자와 여행하려 시간까지 조금 늦추며 기다렸는데 그의 남편 혼자 나왔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그는 매우 쾌활하고 장난기가 가득한 미초아카노였다. 차 안에서 여러 노래를 틀며 이 노래를 알아야만 미초아칸에 들어설 수 있다며 잔뜩 놀렸다. 그도 내게 그랬다. 모렐리아를 아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정말 그 암시처럼 나는 모렐리아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가득한 교육의 도시라는 그곳에는 젊음이 가득했고, 근교에는 아름다운 마을이 가득했다. 


여행 둘째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집주인 부부는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물을 데워주겠다고 말했다. 그 전날 아침 여덟시에 샤워할 거라고 하니 정말 그 시간에 성냥개비로 보일러에 불을 붙여주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더 파츠쿠아로에 가는 길을 확인했다. 보라색 콤비를 타고 종점인 샹가리에서 내린 후 버스를 타면 된다. 샹가리에 도착하니,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 옆에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200페소면 간단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가기로 했다. 


화창한 하늘 아래 펼쳐지는 길이 정말 예뻤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카르텔 영역다툼의 격전지로만 인식해서 와 볼 엄두를 못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한 발자국 더 내디디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파츠쿠아로(Pátzcuaro)에 도착해 따뜻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국물 하나에 타코를 시켜 먹는다. 나도 비슷하게 시켰다. 따끈따근한 국물이 하나 나오고, 타코도 곧이어 나온다. 고깃국물에 라임을 쭉 짜고 한입 먹었는데 아, 너무 비리다.. 나도 백종원 아저씨처럼 세계 맛기행을 하고싶은데… 라임을 한번 더 쭉 짜보니까 이젠 더 못 먹을 맛이다. 미련을 버리고 옆에 대기 중인 타코를 먹었다. 타코는 항상 맛있다. 


파츠쿠아로에서 하니치오(Janitzio)라는 섬으로 이동해야 한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면 영화 코코 배경지라는 작은 섬이 나온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았다. 10명은 더 있어야 갈 수 있단다. 혼자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린아이는 엄마, 아빠랑 잔디밭을 뒹굴며 놀았고 아빠는 힘주어 아이를 들어올렸다. 호숫가를 등지고 멋들어진 모자를 쓴 할아버지 세 분이 이야기하는 모습도 보았다. 호숫가에 반사된 빛과 어울려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여긴 정말 신기한 곳이구나. 나의 모든 환상을 채워주는 것 마냥 황홀한 그림이 반복됐다. 

사람이 얼추 모이고 배가 드디어 출발한다. 저 멀리서 큰 동상이 보인다. 하니치오 섬이다. 섬은 정말 작았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팔찌를 골랐는데, 주인 할머니가 나를 보며 환히 웃는다. 너는 어디나라 사람이니? 한국이요. 한국은 어디있어? 비행기로 몇시간 걸려? 비행기로 열 여섯시간 정도 걸려요. 너 혼자 와있는거니? 네. 넌 정말 용감하구나. 나는 이 섬에서 한평생을 살았는데. 멕시코 여행 많이 다니니? 이야기 좀 해줄래?


할머니께 팔찌를 조금 잘라달라고 했더니 골목 아래에 남편 가게를 소개해 주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할머니가 걱정되어 백신 접종했냐고도 물었다. 올해 초에 맞으셨단다. 그리고 코로나로 사망자가 정말 많이 나왔다며, 이 작은 섬에서 매일 2명씩은 사망자가 나왔다고 전해주었다. 할머니는 내가 혼자지만 씩씩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며 꼭 안아줬다.

섬에서 나와 친춘산(Tzintzuntzan)으로 향했다. 사실 새우타코를 먹고 나오는 길에 다시 마주친 에릭이 태워준다고 했다. 에릭에게 아까 선착장 가는 길을 물어보았었다. 에릭은 비가 와서 오늘 장사는 이만 마무리했다며, 참 반갑다고, 친춘산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어쩔 땐 거절을 잘 못하겠다. 의심하는 마음 반으로 차에 올랐다. 백미러가 없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페루에서도 이런 차를 많이 봤다. 에릭은 2012년에 미국에 갔다가 2년 만에 추방당한 사실을 들려줬다. 그 당시 한 사람당 천만원을 주고 넘었단다. 가족 전체가 갔으며, 밤에만 이동했다. 다시 가고 싶냐고 물으니까 다신 경험하기 싫단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죽을지 살지도 모른 채 걷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도 자기 혼자만 추방된 덕분에 아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잘 커 대학까지 갔다고 말해주었다. 에릭 본인은 미국에 못 가지만 아이들이 자주 찾아온다며 괜찮다고 했다. 


에릭에게 고맙다며 차비 조금을 건넸다. 손사래를 치는 에릭에게 굳이 차비를 두고 왔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이르빙이 그랬다. 가끔은 그냥 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꼭 그렇게 선을 긋는 행동은 나쁜 거라고. 내 마음 편하자고 건넨 차비가 에릭에게는 자기 호의가 왜곡된 것처럼 보였을까. 싶어서. 


에릭 덕분에 편하게 온 친춘산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옛날 고대 문명 의식을 하며 춤을 추고 향초를 피워 올렸다. 사회자는 눈에 띄는 동양인을 의식한 듯 우리 축제를 외국인도 많이 즐겼으면 좋겠다고 한마디 하였다. 공원 앞에서는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들고 뛰놀고 있었다.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모렐리아를 떠나는 날, 아침 일곱시에 산책을 나섰다. 해가 뜨면서 건물 벽에 두 가지 색을 만들어낸다. 장밋빛 벽이 햇볕에 물들면서 수줍은 색을 만들어냈다. 도시 곳곳에 낭만이 가득했다. 


에어비앤비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빵집에 들려 크루아상이랑 여러 가지 맛있어 보이는 빵을 샀다. 3일 동안 잘 묵었다. 후기처럼 센트로 한가운데에 있어 밤에 돌아다니기도 편했고, 에어비앤비 주인 부부는 근교 여행 루트도   짜주었으며, 집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떠나기 직전까지 짐을 맡아주겠다는 그들 부부에게 가방을 내려놓고, 아이패드 하나만 들고 근처 호텔 테라스로 갔다. 


샐러드와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시키고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엄마 생각도 났다. 누군가와 꼭 같이 보고 싶은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일기를 쓰다가 문득 시간이 조금 지났다는 걸 깨닫고, 커피를 채워주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제가 너무 오래있었죠? 하니까, 그분은 활짝 웃으며 손사래를 치더니 아뇨, 사실은 당신이 매일 여기 왔으면 좋겠어요! 한다. 엉뚱한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아침에 바른 우디향 섞인 바디크림 향이 바람 따라 은은하게 퍼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서서히 달궈지는 태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앉아있다. 참, 좋은 인생이다.  


*지난해 7월에 쓴 글이다.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 어떤 글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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