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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볼 브리야 Mar 30. 2022

여행의 단상들


# 과나후아토

알렉스는 과나후아토 가는 길에 만난 친구다. 앳돼보이는 얼굴인 그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블라블라카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꽉 막힌 교통체증에 지쳐 스르륵 잠들었다. 잠깐씩 눈을 떠서 주변을 살피면 알렉스랑 눈이 마주쳤다. 그는 지금 많이 자야 밤에 놀 때 안 피곤하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알렉스는 내가 과나후아토가 처음이라고 말하자, 자기 대학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건 그날 저녁에 같이 술을 마시러 가자는 얘기였다. 


밤 여덟 시, 어둑해진 하늘을 뒤로하고 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 센트로로 향했다. 알렉스는 숙소 앞까지 데려다준 후 준비가 되면 연락하라고 했다. 알렉스와 과나후아토 대학교, 대극장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다가 자기 친구들이 일하고 있는 카페로 향했다. 앉아서 따뜻한 초코라떼를 시키자 곧 근방에서 알바를 마친 그의 룸메이트가 도착했다. 타투를 좋아하는 명랑한 여자애였다. 처음 보는 나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일주일 후에 산루이스 포토시로 캠핑을 갈 거라며 초대했다. 그리곤 알렉스에게 그의 하루를 즐겁게 얘기했다. 알바하는 가게 주인이 내일도 일찍 나와달라고 했다며 오늘은 새벽 3시까지 밖에 못 놀겠다며 선을 그었다. 


카페 알바생 또한 그의 친구였다. 앳된 얼굴에 해사한 웃음이 가득한 남자애였다. 나는 한 걸음 떨어진 양 그들을 보며 나의 20대 초반을 떠올렸다. 공부하면서 밤늦게까지 알바도 하던 시절을 꽉 채운 건 맹목적인 불안함과 함께 친구와 나누던 고민들, 실없는 농담에도 소리 높여 웃던 딱 그때만의 분위기였다. 고양이가 최근 살이 많이 쪘다며 바꾼 사료 탓이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그들이 귀여웠다. 몸은 피곤한데 해야 할 일이 많다며 투덜거리는 것 또한 싱그러운 청춘 같았다. 그들을 지켜보며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랬다. 회상할 수 있는 시기가 생길 만큼 나도 변했구나. 그래도 지금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조금 예민하고 한 걸음 템포가 느려진 지금이 나름 마음에 든다.


# 스페인 마드리드

하루에 3만 걸음을 걸어도 지치지가 않았다. 대로변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을 탐구하듯이 걷는 게 즐거웠다. 도시는 테라스에 앉아 맥주와 와인을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빠에야 한 접시를 두고 둘러앉아 즐겁게 대화하는 이들도 있었다. 문득 도시가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버스나 차량에서 나오는 소음이 거의 없었다. 도시 전체를 잇는 버스가 전기차이다보니, 뿌연 매연과 엔진 소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상은 이렇게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시야를 넓히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스페인을 짧게 다녀오고 나서 멕시코 거리를 활보하는 오래된 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는 손을 휘휘 저을 정도로 매운 매연이 남는다. 


# 께레타로 어느 외진 섬

바람이 부는 방향을 이용해 숯불에 금방 불을 붙이는 남자친구를 보면서 아빠를 떠올렸다. 아빠는 1월 1일 바닷가에 일출을 보러 갈 때마다 어디서 드럼통을 구해와 금방 불을 붙였다. 그럼 금세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모였다. 언 몸을 녹이는 데 그만이었다. 나는 아빠를 가끔 미워했지만 그런 면은 미워할 수 없었다. 수영도 잘하고 뚝딱 뭐든 잘 만들어냈다. 이렇게까지 멀리 와서도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났다는 것도 신기했다. 아빠도 어딘가 놀러 가면 밤하늘을 보며 말을 걸었고, 꽤 오래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숯불에 고기도 잘 구워 접시 가득 올려주었다. 


께레타로 어느 외진 섬에서 옥수수 또르띠야에 와하카 치즈를 가득 올려 바삭하게 만든 토스타다와 잘 구운 고기로 저녁을 해먹고, 달 그림자가 호수에 넘실거리는 어둑한 시간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너른 등에 얼굴을 파묻거나 하면서 주말을 보냈다. 행복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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