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동굴 밖 이야기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가기 전 겸사겸사 감정의 정리도 할 겸 감정카드를 사용해 보려고 했는데, 무언가 감정의 평온함이 느껴졌던 주간이었던 거 같아서 글만 써보려고 한다.
감정의 평온함
지난 한 주간 감정의 평온함을 느꼈다. 평온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감정 기복이 예민한 편인데 짜증 나거나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죽고 싶거나 자해 충동을 느끼지 않아서 감정이 평온하다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좀 이상한 건 있었다.
드라마 <빈센조>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장한석(옥택연)이 빈센조(송중기)가 몰래 약을 탄 생수를 마셨고 욕조 안에서 정신을 잃는 장면이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다가 갑자기 '아, 저 약을 먹으면 저렇게 스르륵 정신을 놔버리는구나.' 하며 흥미롭게 생각했다.
단순히 새로운 걸 알아 흥미롭다는 것이 아니라 ‘아,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졌기에 나는 내가 일부러 이런 생각을 한 거 같아 내가 왜 이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건강해져 가지만 기쁘지 않은 이유
지난주에 클라이밍 일일 강습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운동인데 허리가 아프면 어쩌나, 다음날 움직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도전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클라이밍에 도전하고나서 참 내가 많이 건강 해졌다는 걸 알게 됐다.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서 만족도도 높고 욕구도 충족돼 좋았는데 뭔가 ‘건강해졌다!’, ‘다행이다!’, ‘기쁘다’ 이런 감정들이 떠오르지 않아 이상했다.
건강해진 게 싫은 건가? 그냥 우울한 상태로 가라앉은 상태로 있고 싶은 걸까? 생각했지만 의사의 대답을 듣고는 어쩌면 내가 좋은 감정들을 잘 못 느끼고 있는 건가 싶었다.
위의 생각들을 의사에게 얘기했다. 전체적인 내용들이 생각나지 않지만 아래와 같은 말을 했던 거 같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을 한 거지? 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좋다고 했다.
또 하나 많은 이들이 일상을 살아갈 때 “와! 너무 기뻐”하기보단 그냥 살아간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조금 건강해지면 뭔가 큰 감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참 별거없는 인생인데, 난 뭘 생각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