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인 삶에 대한 집착
최근 동기 하나가 이직을 했다. 누구나 아는 대기업으로.
이 동기는 정말 대단한 친구였다. 입사 첫 달부터 무러 3시간 지각을 3일이나 했으며, 회식에선 술이 취해 한 말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커피를 사 가곤 했다. 이 친구가 살아남으려면 일이라도 잘했어야 할 텐데, 업무능력은 더 처참했다. 시킨 일은 이면지에 정리해서 빼먹기 일쑤에, 기술 용어는 하나도 몰라 메신저로 몰래 물어본다. 회사 비품 위치도 잘 몰라서, 과연 나랑 같은 2년 차가 맞나 싶었다. 이 놈 덕에 내가 반사효과로 잘해 보이는 건 좋았지만, 크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동문인 이 친구는 입사 초기부터 이직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연고지가 중요해 부산 근처에서 일할 수 있음에 만족하는 나와는 달리, 더 돈을 많이 받고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싶어 했다. 하지만 덜렁거리고 부족한 성격인 이 친구가 이직은 고사하고, 자격증이나 하나 제대로 딸 수 있을까 싶었다. 역시나 2년간 이직 시도의 결과는 전부 낙방이었다.
그런 이 동기가 갑작스레 이직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드디어 성공했구나 싶었다. 동기 단톡방에서 다 같이 축하해주며 이 회사를 탈출한 것에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동기를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동기를 응원하고, 혼자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대로 여기서 계속 다니는 게 맞는 걸까?"
분명히 입사할 때는 연고지 하나만으로도 여기에 다니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큰 규모의 제조업 기업을 찾기가 어려운 이곳에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오지에서 외롭게 근무하는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외진 곳이나 내 연고와 먼 곳에는 지원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다른 대기업 합격도 마다한 나는, 동기의 이직 소식 하나에 흔들려 버린 것이다. 참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나 만의 기준을 확고하게 정해두었다 생각했고,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더더욱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나와는 큰 연관도 없는 사람의 소식 하나로 생각이 많아졌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탓일까, 가져보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사람은 주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에 대한 평가라면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재수/삼수를 한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난 고가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였다. 하지만 좋은 학점과 스펙을 가지고 유명 대기업에 취업한 대학 동기 사이에선 아무도 안타는 비인기 차량이다. 나도 모르게 고등학교 친구 앞에선 어깨가 올라가고, 대학 동기 사이에선 말수가 줄어든다. 분명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회사를 결정했음에도, 주변의 평가에 자신감 수치가 요동치는 것이다.
타인과 나의 비교가 쓸모없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할 때 생각나는 치킨만큼이나, 이 비교란 놈은 떨쳐내기 힘든 놈이다. 학창 시절 난 "평균적인 삶"을 설정했다. 성적은 상위 20% 안에는 들고, 운동을 어느 정도 할 줄 알며, 좋은 직장을 26살에 들어가고, 연애 횟수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게 평균적인 삶이라 생각했다. 이런 삶을 살고자 악착같이 노력했다. 그렇게 살아야 행복해지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사회에서 본 "진짜 평균"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아니 애초에 평균적인 사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참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개성 넘친다. 멀리 나갈 것도 없이, 같은 학교, 같은 회사에서 조차 사람들의 삶은 너무 달랐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니, 어느새 내 생각도 변해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허상을 쫒기보단,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 밖을 나서기 싫어하며, 집 근처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하길 바라. 하지만, 하고 싶은 건 많아서 주변에 많은 것이 갖추어져 있어야 해. 예쁜 카페나 좋은 경치 보는 것을 좋아해 멀지 않은 곳에 좋은 관광지가 있어야 해. 나는 손으로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해서 창작하는 취미를 주로 해. 나는 성격은 밝고 낯을 안 가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해...
기준을 설정한 뒤부터, 평균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다. 나만의 기준으로 내 삶을 채워가다 보니,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명확해졌다. 그렇게 나는 평균 강박증과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이번 동기의 이직이 나를 흔들어 놓은 것은, 어쩌면 첫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직장생활은 처음이라 뭐가 좋고 나쁜 건지 분간이 안되기에, 취준생의 입장에서 세운 직장 선택 기준은 기초공사가 튼튼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당연하다. 고작 몇 년 남짓한 시간으로 적절한 가치 판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내 기준은 무너졌다. 하지만 좌절은 하지 않는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가설이 반박되며 과학이 발전했듯, 내 기준들도 끊임없이 무너지고 세우길 반복하며 단단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