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어찌나 소심한지, 부모님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할 줄 알았다. 태어나서 가장 크게 한 일탈이라면 중학생 때 하교하고 몰래 1시간 피시방 간 정도? 지금 생각해도 간이 배밖에 나왔었네. 학창 시절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부모님에게 난 유망주로 길러졌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할 때면 서울권을 노리라는 말이 나오고, 모의고사 결과가 이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상담이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기계공학을 전공하면 높은 취업률은 물론이고, 오래 일할 수록 노하우가 쌓여 정년도 길다는 것은 알았다. 근데 고모부, 물리만 4년 내내 공부한다는 것도 알려주셨어야죠. 과학탐구에서 생물/화학을 택한 나는 팔자에도 없는 물리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내신 7등급이었는데...
영화관에서 '리얼'을 본 적이 있는가? 강의를 듣는 내 심정이 그랬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20살인 내가 아는 물리공식이라곤 'F=ma'인데, 교수님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란다. 살면서 물로켓은 날려봤지만, 진짜 로켓이 날아가는 시간을 구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나름대로 수업도 듣고 필기도 해가며 열심히 공부하긴 했다. 근데 중간고사를 치며 내 옆에서 잠만 자던 동기는 내 점수의 2배를 받았다. 고등학교 때 물리 2를 수강하고 왔었던 그에게 대학 물리학은 구구단을 외우는 기분이었으리라.
이 곳에서 나는 '능력 없는 사람'이었다. 부족하고 재능 없는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패배자였다. 혼자서 아무리 끙끙대 봐야 어쩌나. 안되는걸. 그렇게 세상을 원망하고, 입시 시스템을 욕하며 술을 마셨다. 시험 기간 1주일 내내 술을 퍼마셔대는데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있나. 학사 경고를 겨우 면할 정도의 성적을 받고 군대로 도망갔다.
제대와 동시에 계절학기를 들으러 갔다. 복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학점을 만들었다. 사람이 참 신기한 게, 어떻게든 하면 또 된다. 개념을 모르면 인강을 찾아 듣고, 문제가 안 풀리면 공부 잘하는 동기에게 밥을 샀다. 알파벳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던 내가, 오픽에서 IH라는 꽤 괜찮은 성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도서관의 단골손님이 되어 취업을 준비해 갔다.
그렇게 4학년 2학기, 나는 취업을 위해 자소설을 찍어내는 사기꾼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대기업에서는 내가 슈퍼맨인 줄 알 거다. 그리고 면접장에서 그동안 강연을 하며 갈고닦은 말발로 합격을 했다. 그간 미친 듯이 달려왔던 인생의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합격 발표를 듣는 순간, 수능이 끝난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끝이구나. 성공했구나.
이때는 몰랐다. 내가 병신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친 결과이다. 정확하게는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달려온 결과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지. “나에게 맞는 일이란 없어.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나는 되묻고 싶다. “다들 왜 그렇게 사는 거죠?”
제 글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 또한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내용들이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