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회사 내 자리에 앉아 달력을 넘기다가 이맘때쯤을 지긋이 들여다보았다.
" 연휴가 이쁘게 들어있네. 이 날이 오긴 오려나.. "
몇 달 만에 아주 실컷 자고 실컷 걷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으며 4말 5초를 보냈다. 이런 개운한 컨디션은 실로 오랜만이고, 숲속도서관의 날 이후 신고하지 못한 이곳에 들러 일기를 쓰기에 좋은 날이 되었다.
1, 2월은 주말에도 집에서 일했다. 퇴근 후 집에서 일하다. . . 예전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ppt를 회사에서는 만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오래 가져갈 내 고유의 재산이 될 터이니 그래 당분간만 참자, 하는 심산으로 버텼다.
줌으로 집합으로 틈틈이 직무교육을 받았다. 3월 초엔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 나에게 (원체 상태가 안 좋던) 파트너가 도망가는 환난이 닥쳤고, 옆자리의 13년 차 팀장님이 돌연 퇴사/ 입사했다.
와중에 5회 연속 격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고유의 업무도 해치우느라 만성피로가 데일리 착장이었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다.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능력자"가 (나도 모르게) 되어있었음을.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사람 잘 뽑아야 한다며 면접자에게 계속 퇴짜만 놓는 대표님에게 다 필요 없고 저 더 이상 혼자 못하겠으니 이달 안으로 뽑아주시든지 아니면 사표를 받아주세요,라고 말한 그 다음 주에. 후임자가 들어와 앉았다.
잠시 뒤돌아본다.
사실 힘든 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한 7년어치가 아닐까 싶을 만큼 큰 생일 축하를 받았던 3월이었고, 탑파이브 안에 꼽을 정도로 좋은 동료들을 만났으며, 전직한 일에 조금이나마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무교육이라는 명목으로 mbti 등 이런저런 강의를 만나 (자기개발의) 사심을 채우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있는 조기퇴근데이를 마음껏 누리며 보상심리를 다독인다. 구직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일 자체에서 오는 보람은 물론 있는데.. 그 부분이 차지하는 고단함과 보람의 포션은 코스피 같다. 변동성이 너무 크다.
감기도 누울 자리를 보고 들어오는지. 이제 시간과 여유가 생기니 코시국 이후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감기에 걸렸다. 연차를 연휴에 붙여 후련하게 쉬어버렸다. 오메가3의 과복용 덕분일까, 계속 생각만 하고있던 어나더 플랜이 슬슬 길어올려졌다. 그렇게 앓고 나니 개운했다.
만인의 시절은 미드스프링을 통과하고 있지만, 내 카이로스적 시간은 하나의 끝 그리고 시작인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