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속 4N k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는다 May 14. 2023

다행인 휴일 오후

지난주는 평일 동안 내내 비빔면이 먹고 싶었다. 금요일 점심은 외식데이인데

생선구이집이 대세가 되어 (끌려) 가는 바람에 함흥냉면/ 비빔면 같은,

그런 종류의 것을 먹고 싶은 나의 바람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럴 땐 주말에 풀면 되지.

어제 먹다 남은 연어초밥 3피스를 곁들여 비빔면을 해 먹고

슬링백에 책 한 권과 사과 하나를 넣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향한다'라는 말이 맞는 것이, 목적지는 도서관이지만 그 방향에 있는 작은 숲과 아카시아동산 아래서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휴일 중 반나절을 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中

아이들과 비양도에 왔다며 그 예전의 우리가 생각난다는 친구에게서 사진톡이 왔다.

보람아, 그때는 정확히 2013년도이고 6월이었어. 나 제주살이 할 때니까.

십 년 세월이 무엇이길래 자유롭던 니가 결혼을 하고 이 보물들도 나타났구나.

친구라고는 하나 띠동갑 아래의 동생. 문득 그 무렵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는데 계속 미소가 머금어지는 것을 보니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


들어오는 길에는 머리를 잘랐다. 아니 머리카락을. 아주 홀가분한 서타일로.

얼굴도 이렇게 바꾸고 싶지만 내가 이렇게 되려면 하나뿐인 생명까지 걸어야 할 것이므로

이번 생엔 참기로 한다. 헤어스타일만 닮게 자른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저기 운동장에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아빠랑 뛰는 아이들

엄빠랑 배드민턴 치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볕 쬐는 어르신들, 나른하게 일요일 오후를 누리는 사람들. ..

재난영화에서 괴물이 나타나기 직전엔 꼭 보여주는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의 모습들이다.

딱 그와 닮았고 아무 일 없어 참 다행이다.

멀리서 소식을 전해오는 친구도 나도 이 자리에 앉아 내가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매거진의 이전글 亂極當治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