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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노는양슨생 Apr 22. 2021

슬기로운 목발생활

나의 나약함을 가려줄 최고의 애정템들.

목발 생활과 함께 나에게 핫 아이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제일 불편했던 것은 목발을 짚으면서 다닐 때, 자그마한 물건 하나 손에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그마한 핸드폰마저 들고 이동할 수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서, '오빠 물 좀 갖다 줘', '핸드폰 좀 갖다 줘', '이것 좀 버려줘', '책 좀 갖다 줘'... 계속 뭘 갖다 달라, 갖다 놓아 달라 부탁하게 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다 발견한 나의 주머니 달린 경량 조끼. 이 조끼를 입고 주머니에 핸드폰이나 물통을 넣고 다니면 누군가에게 뭘 갖다 달란 부탁을 안 해도 되었다. 이렇게 나의 첫 애정템이 된 조끼. 잘 때 빼고는 매 순간 입고 다니게 되었다.

조끼 옆에 있는 자그마한 리모컨으로는 안방 불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다. 평소에는 잘 안 쓰던 물건이지만,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유용한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 깬 캄캄한 밤에 불을 바로 켜고 안전하게 화장실로 갈 수 있게 해주는 두 번째 꿀 아이템이다.



 

그런데 조끼 안에 들어가는 물건 말고, 조금 큰 물건들은 또 갖다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발견한 가방! 나는 집에서도 가방을 메고 다닌다. 처음에는 작은 에코백에 이것저것 담아 목에 걸고 다녔다. (꺄.. 그때 내 모습은 진짜 웃겼다. 목에 대롱대롱...) 내 모습을 보고 웃겼는지 남편이 자신의 캠핑용 가방을 내어준다. 수납공간이 잘 나누어졌고, 크로스로 맬 수 있는 가방이었다. '오 이거다!!' 싶어 냉큼 남편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이렇게 나의 세 번째 애정템이 생겼다. 가방을 멘 나의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어디 가게???" 라며 쳐다본다. 그 장면이 너무 웃겨 남편의 가방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침대로 가기 전, 밤잠을 설칠 때를 대비한 책과 다이어리, 필기도구, 물통, 핸드폰을 가방에 담는다. 거실에서 안방까지 이 가방을 메고 자러 가는 길, 두 아이가 내게 엄마 잘 자라고 뽀뽀해준다.


 



 나의 작업공간이랄까. 생활공간이랄까. 다리 다친 후 제일 많이 있는 공간은 큰 식탁과 침대. 자그마한 책상에는 내 다리가 들어가질 않는다. 깁스를 했으니 다리를 쭉 펴야 하는데, 쭉 편 상태로 앉으면 책상 위 공간과 내 팔은 아주 멀어져 있다. 그래서 6인용 식탁에 내 공간을 마련했다. 노트북과 다이어리, 읽고 싶었던 책들. 그런데 이 또한 남편에게 계속 갖다 달라고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특히 식탁은 식사하는 공간이라 계속 나의 물건들을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 식사 때마다 나의 물건들을 원래 자리에 갖다 달라고 부탁하는 게 싫었다. 사람은 그 상황에 맞춰 산다고, 이럴 때 지혜가 마구 생기나 보다. 남편에게 식탁 밑에 큰 상자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우유상자를 갖다주며, 물건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의 물건들이 가득한 우유상자. 노트북, 독서대, 핸드크림, 지갑, 책들, 끼니때마다 먹어야 약 등... 식탁 밑 우유상자가 나의 네 번째 애정템이 되었다.





 다음은 바로바로 방수 깁스 커버. 의자에 목을 젖힌 채, 남편이 머리카락을 감겨주었다. 이 호사를 몇 번 즐기고 나니 내 마음대로 감을 수 없는 머리카락이 매우 가려웠다. 슬금슬금 몸도 간지러운 것 같고. 그러다 방수 깁스 커버를 알게 되었다. '어머 이건 사야 돼!'

 별로 비싸진 않지만 몇 번 안 쓸 것 같아 사는 게 고민되던 찰나에 앞으로 3-4주를 더 못 씻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구매했다. 그리고 새 세상이 열렸다. 씻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뜨끈한 물에 몸을 뿔리 지도 않았는데 때가 술술 나왔다. 나는 1시간 동안 목욕을 하며 행복을 만끽했다. 처음 방수 깁스 커버를 하고 목욕하던 날, 너무 떨렸다. 혹시라도 커버 속으로 물이 샐까 봐. 손이 닿는 곳에 샴푸, 바디샤워, 폼클렌징 등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했다. 노란 플라스틱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았다. 방수 깁스 커버를 끼우며 여러 번 살펴보았다. 물이 새지 않을지. 떨리는 마음으로 샤워기를 켠 순간,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샤워 하나 하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인가.. 정말 깁스 덕분에 일상의 소중한 행복을 알아가게 된다.



 

 

이건 애정템은 아니지만, 보면 웃음이 나는 아이템이다. 바로 꼬챙이. 좀 더럽긴 한데, 깁스 속 다리가 너무 간지러웠다. 땀이 줄줄 나는 한여름이 아닌 것에 감사했지만, 긁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남편은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옷걸이를 하나 꺼내온다. 그러더니 뚝딱뚝딱 꼬챙이 하나를 선물해줬다.

'악~~~~~'

보자마자 경악하며 웃었다. 나름 세심하게 테이프를 감아온 모습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빨리 사용해봐. 긁어봐 어떤지 ~~~"


 끝이 조금 날카로웠지만 나름의 간지러움을 해결해주었다. 나의 여섯 번째 깁스 아이템은 옷걸이 꼬챙이. 하.. 다리 다 나으면 이 애정템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혹시 나처럼 급작스럽게 다리를 다쳐, 깁스와 목발 생활을 하며 집순이가 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기록해보았다. 쓰면서도 웃기지만, 정말 지금의 내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핫 아이템들이다. 밤잠을 설치며 검색했던 누군가의 기록에는 바퀴 달린 의자도 매우 유용하다고 했다. 우리 집엔 바퀴 달린 의자가 없어 사용해보진 못했지만 거실과 화장실을 가로지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게 나약한 게 아니라는 걸. 나처럼 다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혼자 밥을 차려먹겠다며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꺼내던 순간. 멸치 통이 우르르 쏟아졌다.

'아씨.. 나는 혼자 밥도 못 차려먹는 존재가 된 건가..'


남편이 출근 전 식탁 위에 꺼내 주는 점심거리를 보며, 자꾸만 부탁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나만 이런 걸까 봐 걱정했다. "목발 짚고 택시 타고 병원에 오세요."라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덜컥 겁이 먼저 났었다. 나는 혼자서 집 밖에 나가는 게 너무 무서운데.. 넘어지면 어떻게 해.. 목발 짚다가 미끄러지면 어떻게 해..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다른 사람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방법을 찾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바뀐 환경 속에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웃기지만 조끼를 입고, 가방을 메고 혼자서 해보겠다고 하는 내 모습을 공감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약하지 않아. 열심히 잘 살고 있어."


라고..

 한편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한 나의 선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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