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가득 물건들이, 장난감들이 꺼내져 있었다.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기들만의 놀이를 위해 큰 베개를 꺼내 거실로 왔다. 나는 그 모습을 즐겁게 쳐다보았다.
주말은 놀기 바쁘고, 쉬기 바쁘므로 집 정리와 청소를 하지 않았다. 평일에도 사실 집 정리를 즐겨하진 않지만... 주말엔 더 집안일에서 멀어지고 싶다. 아이들은 새로 배송 온 1인용 텐트를 펼쳐, 아지트를 만들었다. 랜턴을 꺼내 불을 밝혀본다며 즐거워했다. 남편은 불은 꺼주었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카메라에 소중한 모습을 담고 싶었다.
핸드폰을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순간!
앞이 캄캄했다. 숨을 못 쉬겠더라..
헉헉대고 있는데, 옆에 아이들과 남편이 왔다.
"괜찮아?"
"엄마 괜찮아요~?"
넘어졌다. 에잇 다 큰 어른이 넘어지다니.. 게다가 집에서 말이다.
익살꾼 둘째는
"거봐 조심히 다니라고 했지?" 라며 내 흉내를 내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른쪽 무릎.
중학교 때부터 계속 아팠던 무릎은 결국 고등학교를 입학할 시기에, 크게 다치면서 슬개골 탈골 증상으로 수술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오른쪽 다리를 참 아껴 썼는데..
하필이면 오른쪽 무릎을 부딪혔다.
'아오 엄청 아프네...'
두 아이가 갖다 주는 얼음팩으로 찜질을 하고 있었다. 웃고 넘기는 우리만의 해프닝일 줄 알았는데..
자꾸만 무릎이 붓더라..
'큰일이네.. 내일 출근인데.. 수술한 다리라 더 걱정이네..'
무릎이 이렇게나 부었다..
통증이 더해가고, 잠은 오지 않고, 다리는 점점 부어갔다.
'헉.. 아무래도 내일 병원에 가야 되겠다.. '
부장님께 전화를 드리고 통증을 견디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에 간 뒤에 남편과 얼른 준비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월요일 아침, 무릎 전문병원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1시간이 넘게 기다리고서야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어쩌다가 다쳤어요~?무릎뼈가 부러졌어요."
"네???"
무릎뼈도 부러질 수 있구나.. MRI를 찍어 본 뒤 수술 여부를 결정하고, 깁스를 해야 된다고 했다.
'아.. 망했다... ㅠㅠ'
MRI 촬영을 기다리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더라.
옆에서 남편이
"왜 울어? 그렇게 아파??"
"아니.. 아픈 건 아닌데.. (훌쩍훌쩍)"
"그런데 왜 울어..?"
아파서 우는 건 아니었지만 자꾸만 억울한 마음이, 속상한 마음이 들더라. 넘어지던 순간 바로 그 직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 왜 사진을 찍으러 가려고 했을까.. 가만히 있을걸.. 집 좀 치울걸...'
올해 마음을 다잡으며 하고 싶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후루룩 지나가갔다. 내 계획들을..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못하겠구나...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혁신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꼭 그분께 배우고 싶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학교에서 그분을 뵙고 정말 신이 났다.
'꼭 부장님이랑 동학년 하고 싶다..!'
그리고 바로 올해! 부장님과 동학년이 되었다. 저학년은 처음이고, 처음 해보는 교육활동들이 낯설었지만 정말 재밌었다. 봄맞이를 위해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봄시를 낭송하며 교실에 찾아오는 봄들을 기다렸다. 진정한 2학년이 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2학년 진급식을 하며 뿌듯하고 감격스러운 순간들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진정한 2학년으로 거듭나기, 진급식 활동
그런데 이제는 그 활동들을 함께 할 수 없다니... 눈물이 펑펑 났다.
옆에서 남편은 쉴 기회라고, 그동안 네가 너무 달려와서 이렇게 강제적으로라도 쉴 기회를 주신 거라고.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해줬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당장은 너무 슬펐다. 나는 나를 안다.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성취하면서 나의 존재가치를 느낀다는 걸. 그런데 무릎 수술을 하고, 깁스를 해서 혼자 화장실도 가기 힘들고, 돌아다니지 못하는 내 상황에서 분명히 좌절스러움을 느낄거라는 걸.
밀려오는 수술의 두려움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음의 답답함은 뒤로 한채, 자꾸만 속상함이 몰려왔다. 그렇게 내 일상에 날벼락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