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쥐어짜 겨우 생각해낸 말은 "어머~ 너네 3살 차이 나지? 아닌가? 아줌마가 너네 몇 살인지 맞춰볼게~"였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전, 거제도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사장님께서 두 아이를 보고 한 말이었다.나는 저 말을 듣고 왜 기분이 좋았을까?
사장님께서 아이들에게 저 말을 한 순간, '아~ 사장님은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분이구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식당에서 아이들과 좀 더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의 기분이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예쁜 뷰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기쁨인데, 아이를 예뻐라 해주시기도 한다. (배말칼국수김밥 거제장목점)
이곳에서의 좋은 기운은 다음 행선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바다 뷰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아이들에게 젤리를 주신다. 방긋 웃으시며 둘째 아이의 앞머리가 내려와 있는 걸 보시더니 "머리 예쁘게 묶어줄까? 하트 모양으로 묶어줄 수 있는데~"라고 하셨다. 두 아이는 신나는 표정으로 사장님을 따라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내가 가보니 사장님께서 두 아이의 머리를 곱~게 묶어주고 계셨다. 그리고 하하호호 이야기꽃이 펼쳐져있었다.
"엄마, 사장님은 유치원 선생님이셨대~"
"이따 집에 가기 전에 우리 캠핑카 구경시켜드리기로 했어~"
그 찰나에 아이들은 사장님의 이전 직업도 알아내고, 오늘 우리가 차에서 잘 거라고 얘기도 한 것 같았다.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내게, 쿵쾅거리며 돌아다니는 두 아이를 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사장님의 친절에 내 맘이 아주 편안해졌다.
요랬던 머리스타일이 사장님 손을 거치니 이렇게 깜찍하게~ (거제 카페포뷰)
그날 내가 들은 기분 좋은 말들은 주로 아이를 반겨주시는 분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왜 아이를 반겨주는 식당과 카페의 사장님의 말들이 좋았을까?
아마 여행지에서도 나이스 한 엄마이고 싶었던 것 같다.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아한 엄마를 꿈꾸며 내 아이들도 차분하게 여행을 같이 즐겨주길 바랬다.
그러나 에너지 가득한 두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마구 쿵쾅거리고 관심이 가는 모든 곳에 기웃거렸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불안했는데, 아이들을 예뻐해 주시고 좋아라 해주시는 사장님들을 뵐 때 '아~ 여기서는 힘을 좀 빼고 있어도 되겠어. 아이들이 조금은 편안하게 있어도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 엄마가 되고, 맘카페를 접하면서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말은 바로 '맘충'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엄마가 되었는데 벌레 같다고 엄마들을 비하하다니!!!'
나는 더욱더 맘충이 되지 않기 위해 밖에서 부단히 애썼다. 실제로 무례한 부모들을 만나며 더 노력했었다. 아이의 똥기저귀를 식당에 버젓이 놓고 오는 사람들, 줄 설 때 자기 아이만 생각하여 새치기하는 사람들, 놀이터에서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주어도 수다 떠느라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
나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 무척 애썼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오히려 혼자일 때보다 아이와 함께 가는 곳에서는 더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늘어나는 '노 키즈존'을 볼 때마다 속상했다. 카페에 가서 아이와 함께 자리를 잡았는데 옆 사람들이 싫어하는 표정을 보이며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볼 때, '괜히 밖에 나왔네..' 싶었었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더 애쓰고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즐거운 추억만이 가득한 여행이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피해를 주었다며 쓴소리를 듣거나 눈치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이 날은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관광지에서도 아이들을 반겨주시는 분이 많았다. 이벤트로 받은 예쁜 자물쇠를 언니가 갖고 노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쳐다보는 둘째에게 기꺼이 하나 더 주시는 친절함을 베풀어주시기도 하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여기저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니 선뜻 귤을 먹으라고 내어주시는 따뜻함에 참 감사한 하루다.
친절 가득한 거제 여행지들 (거제 바람곶우체국)
오늘 하루 동안 가장 기분 좋은 말이특별하고 달콤한 것일 줄 알았는데...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들었던 소소한 말들도 나에게 좋은 기분을 줄 수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곤 잠들기 전,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는 오늘 하루 동안 들은 말 중 어떤 말이 가장 기분 좋았어?"
"어? 나 오늘 너무 정신없고, 운전을 하도 많이 해서.. 잘 모르겠는데?"
진짜 거제도 오는 동안 오랫동안 운전했다. 그리고 남편의 '잘 모르겠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나도 오늘 하루 종일 생각했는데도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도 남편의 말이 궁금했었는데... 나의 시무룩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남편은 "생각나면 말해줄게~"라고 한다. 그리곤 다음날 나에게 또 하나의 '아하~'를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