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들은 기분 좋은 말을 떠올리다, 남편은 어떤 말을 기분 좋게 생각하나 궁금해졌다.
"오빠! 오늘 하루 동안 들은 기분 좋은 말은 뭐야~?"
이 질문을 남편에게 던지자 남편은 피곤해했다.
"나 오늘 너무 정신없고, 운전을 많이 해서... 잘 모르겠어."
거제도까지 운전한 남편에게 내가 너무 급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남편의 대답이 듣고 싶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말도 이해하기로 했다. 나도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날, 잠들기 전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나 오늘 기분 좋은 말 찾았어!"
"와 ~ 뭔데?"
"내가 한 말도 돼?"
"응? 남들이 한 말 아니고, 오빠가 직접 한 말?"
"어!"
"응 되지~ 뭔데?"
"내가 한 말인데,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 아까 우리 식당에 갔을 때 '그래, 너희들도 하고 싶은 게 있을 텐데... 그걸 들어주면 되는 거였어.'라고 말하고, 리하가 해달라는 거 해줬잖아~"
올해 5살이 된 둘째는 식당에 갈 때마다 아기의자가 있는지 묻는다. 그리곤 아기의자가 있으면 꼭 거기 앉아서 밥을 먹는다. 또래보다 다소 큰 체격이라 아기의자에 꽉 끼기도 하고, 5살이나(?) 되어서 일반 의자에 충분히 앉아도 되는데도 자꾸만 아기의자를 찾는 둘째의 모습이 나는 못마땅했다.
오늘도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아빠! 나 아기의자에 앉을 거야~"라고 외친다. 푹신한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계속 아기의자 타령을 한다. 아기의자가 꽉 끼어 불편함을 느끼는 건 아이라고 여겼지만, 사실 더 불편한 건 부모인 우리였다.
넓지 않은 식당에서 무거운 아기의자를 우리 자리로 가져와야 하고, 원래 있던 의자를 다른 곳에 옮겨두어야 한다. 때로는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아기의자를 물티슈로 꼼꼼히 닦아야 하는 것도 부모인 우리의 몫이었고, 아이가 아기의자에서 내린다고 할 때마다 아이를 번쩍 안아 들어야 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아이가 아기의자에 앉는다고 하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날도 아이를 잘 설득해서 푹신한 자리에 앉히려고 했는데, 남편은 저 멀리 있는 아기의자를 번쩍 들고 왔다. 원하는 대로 아기의자에 앉게 되자 둘째는 행복해한다. 얌전히 앉아 햄버거를 먹고, 언니가 가져온 장난감을 가지고 꽁냥꽁냥 언니와 놀기도 한다. 다른 어느 날보다 훨씬 수월한 식사시간이었다.
아기의자에 앉은 둘째. 세상 행복하구나!
아이들을 얼추 먹인 뒤에 부모인 우리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배부르게 먹은 뒤, 남편이 내게 말했다.
"리하는 그저 아기의자에 앉고 싶은 거였어. 그리고 원하는 대로 아기의자에 앉으니 훨씬 밥을 잘 먹는다~"
(아이를 바라보며) "그래~ 너희들도 하고 싶은 게 있을 텐데, 아빠가 잘 들어줄게~"
두 아이는 아빠의 온화한 표정을 보며 같이 웃는다. 나는 이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남편은 꽤나 인상 깊었나 보다. 듣고 보니 나의 욕구가 있듯이 아이들도 저만의 욕구가 있는데, 때론 그 마음을 몰라 줄 때가 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다시 잘 짚어보면 '내가 귀찮아서...'가 많았다.
귀찮아서 아이가 하고 싶다는 장난감을 꺼내 주지 않았고, 귀찮아서 아이가 먹고 싶다던 초콜릿 우유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귀찮아서 가방 속 핸드크림을 꺼내 주지 않았고, 귀찮아서 오디오클립 동화이야기를 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나의 입에서 나온 변명들은 '안돼 지금은 장난감이 너무 많이 꺼내져 있어서 꺼내 줄 수 없어', '안돼 지금은 초코 가루가 집에 없어', '안돼 엄마 지금 일하고 있어서 꺼내 줄 수 없어', '안돼 엄마 지금 운전 중이라 이야기 틀어주기 힘들어'였다.
나도 내 욕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짜증 나고 화가 나는데,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떼를 부리면 "너 정말 왜 그래!!"라고 같이 화를 냈다. 때론 무섭게 혼내기도 했다.
남편이 말한 것처럼 아이들의 욕구를 들어주면 되는 거였는데... 참 야박한 부모였다.
한편으론, 오늘 하루 동안 들은 기분 좋은 말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한 말을 고른 남편에게 적잖이 놀랐었다.
'오잉?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내가 한 말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고???'
아이들에게 야박하게 굴었던 순간들을 돌아보니, 그때 나 자신이 나에게 다정하지 못했었다. 나 자신에게 야박하게 굴고 있으니, 아이들에게도 당연히 야박하게 굴 수밖에...
나 자신이 한 말을 기분 좋게 듣지 못했던 것처럼.
'들은 기분 좋은 말'을 골라야 하니 당연히 내가 한 말들은 답변에서 제외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한 말을 기분 좋게 여겼던 적이 있었나?
'내가 한 말이 기분 좋게 들린 적 있어?
아니. 없어. 내가 한 말을 소중하게 귀담아들은 적이 없거든.'
이제부터는 내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나의 욕구를 다정하게 바라봐야겠다. 그래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내 아이들의 욕구도 잘 보이고, 아이들의 말도 잘 들어줄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의 말보다 내가 한 말들을 나 스스로 귀담아 들어보자.
그리고... 이미 자기 자신의 말을 소중하게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던 남편, 대단해! (역시 멋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