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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Apr 29. 2020

커피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좋아한다. 아니, 다시 쓰겠다. 커피에 환장한다. 그러나 커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 한다. 기실 커피란 품종, 생산지나 로스팅 방법도 각기 다양하고, 그 외 여러 변수들도 너무나 많이 끼어 있어 어쩌면 커피를 안다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를 거쳐 남미까지 횡단하는 만큼 막연한 미지의 일이기에 커피를 잘 안다는 말이 오만한지도 모르겠다.


  ‘커피는 아메리카노지’라며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많이 양보하여 커피에 우유 정도 넣는 것은 허용하지만, 라떼 이상의 메뉴는 커피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믿음에는 옳고 그름이 없기에 나는 그 사람의 믿음을 존중하였다. 그렇게 믿거나 말거나. 다만, 아메리카노란 커피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현상 가운에 하나인데, 저 믿음은 커피라는 본질에 다가가기엔 너무 연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인간이 소우주임에도 첫인상 내지는 몇 차례의 대화나 만남을 통해 이미 상대를 다 파악한 양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안 봐도 뻔하다’는 식으로 뭉뚱그려 인간을 해석하곤 한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모습이 있듯 저런 모습이나 그런 모습도 있게 마련임에도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 채 이런 저런 현상의 표피만을 더듬으며 자기만의 이분법으로 타인을 구획하곤 한다. 아메리카노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커피라는 본질을 정의하듯 말이다. 두렵게도 어느 때에 누군가에겐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생두를 볶는 과정에서 조금 태웠을 뿐인데, 한 모금 마시고는 몹쓸 커피라고 뱉어낸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또 어떤 날에는 블렌딩이 잘못 되어 원두의 맛과 향이 오롯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무색무취의 커피라고 버렸던 날들이 얼마가 되었을지 모른다. 각종 시럽이나 휘핑과 드리즐 잔뜩 올려 커피 맛이 가려진 날엔 이것은 절대로 커피가 아니라고 단언했던 날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오만과 편견 속에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금세 버림받은 커피가 된 날도 많았을 것이다.


  커피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다. 아메리카노가 커피일 뿐. 이것은 나의 믿음이고, 믿음에는 옳고 그름이 없기에 커피라는 본질에 다가가 위하여 가능한 한 다양한 커피를 오랫동안, 많이 마셔 보고 맛과 향을 음미하는 인내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맛 단맛 쓴맛 고루 먹어 보듯, 에스프레소부터 카라멜마끼야또까지 섭렵하듯, 한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최선을 다해 겪고 난 후에야 그 사람의 본질에 조금 다가갔다 할 것이다.


  여러 커피를 다 맛 본 후에 혹여 배탈이라도 나면 어찌하나. 첫 모금이 왠지 이상했지만 인내하고 더 맛 본 커피가 정말 상한 커피였다면 어찌하나. 그 많은 커피에 들인 돈과 시간과 에너지는 다 아까워서 어떡하나. 어쩌면 한 모금 먹어본 커피를 바로 뱉어 버리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택한 걸지도 모른다. 배탈이 나도록 커피를 꿀꺽꿀꺽 먹지 않을 당위에 대하여 떠들지 않기 위해 커피는 아메리카노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배탈이 나더라도 커피에게 시간을 좀 주어야겠다 하였다. 때론 난생 처음 먹어본 맛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처음 가져보는 생각을 갖겠지만, 그것을 혼란으로 묻어두지 않고, 상대에 대한 수용과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면, 설령 내가 그 커피에 허락한 시간의 끝이 배앓이나 전량 폐기라 할지라도 나는 더 나은 나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번 커피를 다 마신 후에 그 다음 잔은 나은 안목으로 고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좋은 커피, 더 맛있는 커피를 누리며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훗날 그 사람과는 완전하게 헤어지더라도 그 다음의 인간관계를 더욱 충실하고 성숙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커피에 환장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죽을 때까지 커피를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은 산미가 적은 원두가, 핸드드립 커피가 내 입맛에 맞다는 것 정도만 알겠다. 중요한 것은 커피에 조금 더 다가서기 위한 노력과 인내, 커피를 즐길 만한 여유 있는 시간, 좋은 커피를 만났을 때에 좋은 줄을 알아보는 안목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 차리는 나의 예의라고 하겠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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