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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May 23. 2020

무제(perfect lovers)


  지금은 없어진 미술관 플라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전시를 또렷이 기억한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라는 쿠바 출신 작가의 전시였는데, 그 중에서도 무제(perfect lovers)의 작품이 나를 놀래켰던 기억이 있다.


  똑같은 벽시계 두 개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작품으로, 똑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두 개의 벽시계에 동시에 똑같은 건전지를 넣었다고 하였다. ‘perfect lovers'라는 작품명에 모순점이 있었다면 그토록 완벽하게 똑같이 설정한 벽시계가 동시에 멈추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이 차츰 달라지다 어느 하나가 먼저 멈추고야 마는 것이다. 먼저 멈춰버린 벽시계가 일찍이 세상을 떠난 연인 로스라는 해석은 나에게도 꽤나 설득적인 지점이었다. 로스(Loss)라는 이름의 무게만큼 혹은 그 어감 이상으로 토레스에게 무거운 상실감을 남겼는가 보다 했다.


  토레스와 로스의 추억은 같은 시간, 같은 페이지에 적힌 것일까. 어쩌면 타인과 공유하는 어떤 추억도 똑같은 페이지에 적힐 수는 없는 것인지 모른다.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싶어 똑같은 공장에서 나와 똑같은 건전지를 똑같은 때에 넣어도 각기 가리키는 시간이 다른 ‘무제(perfect lovers)’처럼 헤어지지 말자, 멀어지지도 말자, 하나가 되자 했던 두 사람도 차츰 다른 시간에 머물다가 누군가가 먼저 떠나고야 마는 것이다.


  같아지고 싶어 때로는 내가 가진 감정과 생각들을 상대에게 투영하기도 하고, 과하게 밀어부치기도 하지만, 그렇게 실수하고 실패하는 관계 속에서 어떤 추억도 같은 페이지에 적힌 적은 없었다. 완벽하게 똑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나와 상대를 분리하지 못한 순간들도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나는 너로, 너는 나로 엉켜 있던 많은 기억들의 시계가 처음엔 초침으로 어긋나다 종국적으로는 영영 다른 시각을 가리키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멈추기 전부터 너처럼 나도, 나처럼 너도 각기 다른 시각을 가리키다 멈추고 만다는 것이다. 멈출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름의 인정을 기반으로 한 각자의 시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멈출 때까지는 나란히 함께하는 추억. 또 누군가 먼저 멈추더라도 그 추억을 간직한 채 멎어갈 수 있다는 모종의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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