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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 솜사탕 Jun 12. 2020

그 누구도 죄인이 아니다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연극은 축제 속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이다. 극 속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그를 극복해내는 인물들과 행복한 결말에 기뻐하거나, 극 속 인물들의 불행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음에 안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극이 관객에게 기대하는 반응이다.


 하지만, ‘세일즈맨의 죽음’은 다르다. 모든 인물들이 극도의 불행에 치닫다가 마침내 한 인물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며 끝이 나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관객에게 한없는 우울함만을 던져주고 끝이 난다. 심지어 관객이 공연장을 나서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극 속 참담한 비극과 오버랩되는 현실에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왜 이리도 관객에게 깊은 우울함을 남기려 했을까.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한 장면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 로먼은 극의 초반부터 내면의 문제를 갖고 시작한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그와 동시에 오는 불안함이 윌리를 현실감각을 잃고 환상에 빠지게 만든다. 그로 인해 더 이상 외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찰리는 자신이 세일즈맨으로 일하는 회사의 사장인 하워드를 찾아가게 된다. 마지막 사회적인 인간으로라도 남고 싶은 윌리의 소망과는 다르게 하워드는 차갑게 윌리를 대하며 더 이상 일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거절한다.

 

여기서, 윌리는 갑자기 ‘녹음기’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녹음기에서 하워드의 아들의 낭송이 재생될 때 깜짝 놀라며 소리 지르는 장면은, 물론 윌리의 무능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녹음기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녹음기라는 기계가 인간의 목소리를 대신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면,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기계에 대해 윌리가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더 이상 자신이 쓸모없음에 대한 윌리 내면의 불안함이 인간을 대신하는 기계인 녹음기를 통해 더욱 극대화된 것이다. 이를 통해 언제나 윌리에게는 성공의 집착과 사회에서 버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내재되어 있었고, 자신은 결국 다음 세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졌음을 확인하고 얼마나 좌절감을 겪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무대 위에서 윈리 로먼과 린다 로먼의 모습 (왼쪽부터 '예수정 배우님'과 '손숙 배우님') *사진 '예술의 전당' 제공

 윌리 로먼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인 린다 로먼은 항상 윌리 로먼을 응원하고 감싸준다. 하지만, 린다가 진정 윌리에게 힘을 주는 존재였을까? 린다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찢어진 스타킹’과 연결 지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타킹’은 극 속에서 여러 상징을 갖는다.


 먼저, ‘스타킹’은 윌리에게 현실적인 금전적 문제를 상기시키는 장치이다. 린다는 윌리에게 항상 ‘기운 내요.’라고 응원의 말을 전하는 동시에 ‘스타킹’이나 ‘빚’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한다. 실상 윌리에게 끊임없이 마음에 짐을 더하는 것과 같다. 


 린다는 극 내내 집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그녀가 사회에 나가는 모습은 연극 속에서 절대 볼 수 없다. 언제나 집 안에서 가족들을 맞이하고 다시 또 배웅하는 역할로만 그려진다. 린다는 집에서 ‘스타킹 꼬매기’와 같은 여성의 일만 하는 지극히 수동적이며 주체적이지 못한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가족 내에서 '엄마'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다. 즉, 린다는 불평을 쏟아내는 가족들을 감싸주는 포용자의 역할로 보이지만, 사실 극을 잘 들여다보면 가족 내의 문제를 해결하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자의 역할과도 같다.

 

 그렇다고 우리는 린다를 욕할 수 있을까? 린다는 과연 그 시대, 그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시대 속에서 그녀가 해야 했던 것은 너무나도 한정적이고 수동적이었다. 그녀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 두려움 속에 떨고만 있었을 것이다. 팔 걷고 나서서 정신병원을 알아보고 그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당찬 여인의 모습? 그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집 안에서 가족을 맞이하고 또 보내는 것 밖에는.

"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근데 살 사람이 없네." 출처 : 문화뉴스

 윌리와 가장 큰 갈등을 일으키는 윌리의 첫째 아들인 비프 로먼은 어떻게 보면 이 극에서 가장 비참한 인물일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인생이 허망한 환상 속에서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출처 : 문화뉴스

 이러한 비프의 불행을 보여주는 소품이 바로 올리버의 사무실에서 훔친 ‘만년필’이다. 비프는 평생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커왔다. 하지만, 비프는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후 충격을 받은 영향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따로 있다.


 비프는 도덕성을 결여한 윌리의 성공에 대한 인식,  유명해져 사회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기대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것이다. ‘만년필’을 훔친 것도 이것과 연결 지어 설명할 수 있다.


 즉, 평생 자신을 짓눌러온 아버지의 기대에 무엇이라도 얻어야 한다는 불안함에서 나온 도벽 행위라 본다면, 비프의 결핍은 아버지의 폭력성에 의한 젊은 세대의 상처를 의미한다. ‘만년필’을 손에 쥐면서 비프는 아버지가 남긴 허상을 벗고 진실을 바라보았고 그 진실의 아픔을 깊이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극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들은 각자만의 문제점과 고통을 안고 있다. 윌리는 버려짐에 대한 불안함과 좌절감을, 린다는 갈등의 본질적 해결에 대한 두려움을, 비프는 진실과 마주함의 고통을 내면에 깊이 간직한 채 로먼 집안은 불행의 끝을 달린다. 로먼 집안의 파멸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모두의 잘못이다.


어쩌면 이 극의 작가가 이 극을 이토록 우울하고 어둡게 만든 것은 문제를 극복해나가는 희망을 전하기보다는 극의 우울함을 현실까지 갖고 가서 한번 더 곱씹어 보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진실을 외면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회 속 뒤틀림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며, 진정 로먼 가족의 비극적 운명과 지독한 불행이 비단 로먼 가족만의 문제인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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