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편해져도 괜찮아요.
학생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였다. 휴대폰을 압수하는 것,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 꾸중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지고 교사가 훈육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제한이 생겼다. 교사는 그저 친절한 사람이면 됐고 불편한 이야기는 부모님이 지도하시도록 전달해드리기만 하면 됐다. 미소를 띠고.
"A가 학교 3층 복도에서 가래침을 뱉는 걸 여러 번 걸렸어요. 가정에서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B가 거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합니다. 부모님께서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해 지도해 주시기 마랍니다"
"C가 남자친구와 복도에서 키스를 한다고 학생들이 신고했어요. 부모님께서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시고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 간의 갈등도 모두 폭력이 됐다. 서로 감정이 좋지 않으면 작은 꼬투리로 학폭심의위원회까지 가는 일이 가능하다. 증거가 없어도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의 의지만 있다면 학폭심의위원회까지 가서야 결론이 났다. 그렇게 한 두 달을 보내는 일이 잦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도 교사는 화해를 시도하지 않는 게 낫다. '화해종용'이라는 오명이 입을 벌리고 있으니까.
교사가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나니 오히려 교사는 편해졌다. 학생의 문제행동으로 수업이 개판이 되어도 친절하게 웃어주는 편이 좋다. 아동학대신고로 직위해제부터 당하지 않으려면. 학폭신고가 들어오면 깔끔하게 서류정리하여 상급기관으로 발송하면 된다. 공정하고 친절하게.
지쳐있는 동료교사들에게는 이런 교직관을 추천한다. 그것만으로도 성실한 교사이며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교사에게 주어진 권한이 거기까지 일지도 모른다. 그 이상은 권한 밖의 일이라 부딪힘이 많아질 것이다.
한편 주변 선생님들 중 이렇게 편한 길을 가지 않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신다. 위의 교사상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가기 때문이다. 이런 선생님들이 소중하다. 자신의 교육이 교사에게 위험하고 오히려 자신을 공격할 빌미가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교사로서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들의 사명감, 애정, 관심마저 사라지면 학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고민하는 교사보다 안전하고 편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교사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뜻이다.
고민하는 교사들이 지치지 않기를, 그들이 편해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