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W May 29. 2024

플러팅 하는 체육수업

최의창, <스포츠리터러시 교육론> 4장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결혼은 니들끼리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가족끼리의 결합”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기 쉽지 않았다.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부담으로 다가왔기에 결혼을 미뤘고, 가문과 가문의 만남이라고 했으면 장담컨대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 필요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겠다는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니 결혼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결혼을 시작해 아내를 사랑하다 보니 아내의 가족이 내 가족으로 느껴졌고 아내의 성씨(가문)에 애정이 생겼다. 스포츠도 시작부터 내층적, 심층적 이유를 한꺼번에 고려하면 시작조차 부담스럽지 않을까. 일단 그 스포츠(게임)가 재밌어야 그다음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법이다.


   ‘목적’이라는 키워드를 보면 자동적으로 내재적/외재적 목적이 떠오른다.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어도 자동적으로 따라 나오는 분류고 왠지 모르게 이분법적으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내재적 목적이 더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뒤따른다. 이것도 주입식 교육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챕터에서는 목적을 3중으로 분류했고(표층/내층/심층) 각각의 의미를 공평하게 다루고자 노력했다. 옵션이 하나 더 늘었다는 점에서 나는 마음이 편해졌고 이 중 우월한 것을 찾기보다는 내가 선호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점이 새로웠다.

  나는 표층적 목적을 추구하던 교사였음을 고백한다. 체육교사로서 나의 교육목표는 학생들이 ‘자신의 평생 스포츠’를 하나 이상 찾도록 돕는 것이었다. 운동을 싫어하는 학생은 아직 ‘자신의 평생 스포츠’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가정하고 다양한 스포츠를 소개해주려 노력했다. 그렇게 스포츠인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스포츠 플러팅을 시작했다. 먼저 대중적인 축구 수업을 하고 재미를 못 붙이는 학생에게는 더 쉬운 변형게임을 제공한다. 그래도 안되면 축구를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한다(관람, 영화, 소설). 축구로는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다음 수업은 티볼이다. 티볼로도 안되면 킨볼이다. 킨볼로도 안되면 배드민턴으로 시도한다. 심지어는 줄넘기라도 학창 시절에 자기 종목을 하나만 찾는다면 그 학생은 어느 종목이든 스포츠에 입문하게 될 것이다. 체육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단 한 종목만이라도 자신에게 맞는 스포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이런 유혹이 가능하다.


   A학생은 자신의 종목으로 ‘농구’와 만났다. 농구라는 게임의 재미를 알고 몰입하게 되니(표층적) 비 오는 날의 체육시간이면 농구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라도 보자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내층적). 졸업하고 찾아온 A는 여전히 농구를 사랑하고 있었고 농구 문화에 입문하여 농구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심층적). 이 학생에게 시작부터 농구의 심층적 목적부터 보여줬다면 부담스러워서 기겁했을지도 모른다. 플러팅의 기본은 호감 있는 눈빛이 시작이다. 이제 호감이 생기려는 관계에서 출산계획까지 얘기하면 평생 솔로로 남기 십상이다. 힘을 빼고 표층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르치기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시작부터 호울링(wholing)만 이야기하면 학습자는 와닿지 않을 것이다. 트레이닝부터 시작해서 디벨롭핑과 호울링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며 만약 앞 단계가 생략된다면 그 어떤 학습자도 교사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교사가 방과 후 수업으로 농구수업을 할 때 드리블을 하지 못하고 공을 계속 놓친다면 그 단계에서 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게다가 교사가 디벨롭핑과 호울링을 감동적으로 설파하더라도 학생들은 드리블을 하지 못하는 교사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스포츠 플러팅이 성공되어야 그다음이 생길 수 있다.


  저출생과 비혼율이 높아지는 세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말 이것이 걱정이 된다면 젊은 세대들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게 해줘야 한다.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말이다. “부모자격이 없다”, “부모 손에 커야 애들이 바르게 큰다” 이런 말을 하면 젊은 세대는 아이 낳기가 부담스러워진다. “결혼은 니들끼리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면 결혼 못한다. “결혼생활은 니들끼리 좋으면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해줘야 시작하는 젊은 커플이 용기를 낼 수 있다. 스포츠도 일단 한번 재미를 느끼게만 만들어주자. 그다음은 뜯어말려도 빠져드는 것이 스포츠의 힘이다.

작가의 이전글 매력이 없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