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고 있는 내게 수년전 봄에 있던 일이었다. 3월 말이었던가? 오후에 워싱턴 DC에서 출발하는 뉴욕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틀간의 회사 일을 마치고 레이건공항 델타청사에서 이륙을 기다렸다. 뉴욕시 라과디아 공항으로 가는 셔틀항공기 좌석은 대략 150석.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주중에 DC에서 일하고 뉴욕의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꽉찼다. 워싱턴 DC는 내가 일 때문에 거의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이날 오후 몸이 좀 피곤한채 탑승했지만, 화창한 날씨로 기분이 좋았다. 이륙하기 전 잠깐 둘러본 포토맥 강. 맑은 날씨에 벚꽃놀이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주변을 가족들이 삼삼오오 여유롭게 걸었다. “봄이 왔구나. 내가 싫어하는 추위도 이제 가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즐거웠다. 역시 화창한 날씨는 마음을 밝게 하는구나!
워싱턴 DC에서 처리한 일들을 생각하니 성과도 있어 마음도 한결 편했다. 이윽고 비행기는 버지니아 외각을 벗어나고 있었다. 화창한 경치를 보면서, 잠깐 졸았는데, 항공기는 어느새 뉴저지 상공에 다가섰다.
조지워싱턴 브리지 직전에서 뉴욕시 동쪽 롱아일랜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파란색의 대서양과 롱아일랜드 섬이 대비 되면서 장관을 이루었다. 곧이어 뉴욕시의 촘촘하게 서있는 빌딩과 집이 펼쳐졌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래를 바라 보았다.
가만, 내가 사는 곳은 어디있지? 거의 찾긴 했지만 바둑알보다 훨씬 작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존재가 너무 작아보였다. 무가치하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상대적인 초라함!
그런데 그 순간, 내 머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조금전 델타항공 청사의 개찰구에서 나의 탑승권을 확인하던 중년의 여직원. 그녀가 “땡큐, 미스터 민!”하면서 맞아주던 장면이 떠 올랐다. 그 직원은 항공기를 꽉 채우게될 승객들의 탑승권에 적힌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땡큐!”라고 하지 않았던가! 분초를 다투며 탑승 처리 업무를 끝내야 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정성껏 부르면서 감사를 표했다. 멋진 직원이었다.
많고 많은 사람중에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있다니 위로가 되었다. 그것도 여러 인종중에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동양인인 나의 이름을 불러주다니, 고마왔다.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던 어느 한인 교수의 경험담이 떠오른다. “어느 대학 졸업식 때 목격한 일이지요. 가족과 지인 수천명이 졸업식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총장이 어느 나이든 졸업생에게 학위증을 수여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예닐곱살 되어 보이는 졸업생의 아들이 학위 수여 장면을 찍기 위해 힘들게 단상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사진 찍는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소년이 실망스레 돌아서는 순간, 총장이 소년을 불러 학위수여 장면을 다시 연출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수천명의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 총장에게 존경을 표했습니다…”
차질없이 순서가 진행되어야 했지만, 그 어린아이의 ‘실망스런 마음’을 어루만져준 총장… 99마리의 양도 중요하지만, 바로 한마리의 양을 소중히 대해주신 예수님과 그 총장분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삶의 순간 순간 만나는 한사람을 소중히 대하고, 그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그 사람의 말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 되면 좋겠다. 독일 신학자 불트만이 말했던가? “당신이 지금 만나는 바로 그 한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시요!”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란다. 도전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이다.
레이건공항 델타청사에서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대했던 여직원. 그 나이든 여성분의 모습은 오래된 일이지만 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