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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Dec 24. 2023

[생각] 단조로 시작한 아침

당장은 어떻게 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날들이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재생한 첫 노래가 괜스레 마음을 울릴 때,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조금은 마음이 지칠 때, 뜻밖에 찾아온 기쁘거나 행복한 일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곁에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때는 한없이 깊은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 오래 전의 나였다면 마땅히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성숙했다고 말하긴 어려워도, 나름은 성장 중인 지금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해야 할 일들을 소화한다.


완전하지 않아도, 만족스럽지 않아도 어떻게든 삐걱삐걱 거리며 일과를 하나씩 처리해 간다. 그래야 미래를 다시 꿈꿀 수 있으니까, 그래야 행복의 밑자락이라도 붙잡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걸까?', '나는 도대체 어쩌고 싶은 걸까?'라는 의문마저 들기 시작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럴 때는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의 마법을 떠올리며 생각을 멈춘 다음 다시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 마법의 주문조차도 말을 듣지 않는 오늘 같은 날들이 때로 찾아온다.

그런 날에는 망망대해 속 해파리떼처럼 흐느적거리는 생각들을 펼쳐놓고 먼발치에서 그저 한없이 바라본다. 해파리들은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드넓은 물속을 마음껏 유영한다. 그 모습이 꽤 못마땅하지만 일단은 내버려 둔다.


해파리들은 서로 부딪히고 뭉치며 조금씩 덩치를 불려 간다. 그러다 끝내는 커다란 해파리 두세 마리만 남게 된다. 그때 나는 듬성듬성한 그물을 하나 짜서 해파리를 건져낸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만들어 낸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또 어떻게든 살아진다.  


*


멍게는 성장 과정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올챙이처럼 생긴 어린 시절에는 척추동물처럼 시각, 후각, 뇌, 근육, 신경, 척삭 등의 고등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성체가 되면서 대부분의 기관을 먹어치우고 돌이나 바닥에 달라붙어 플랑크톤만 건져 먹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딱딱하고 빨간 형태가 되는 것이다.

한때는 생각이란 건 많이 할수록 당연히 좋은 것으로 여겼다. 해답이 있는 문제든 그렇지 않은 문제든, 사고의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혹은 문제에 대해 더욱 명확히 인식하게 되고, 결국 문제가 풀리든 그렇지 않든 다음의 더 발전된 사고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뇌를 덜어낸 멍게에게 우리가 배울 점도 있는 것 같다. 멍게처럼 뇌를 먹어치워서는 안 되겠지만, 당장 풀리지 않는 문제를 놓고 고민만 하다간 해결과는 점점 더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일단은 현 상황에서 충분히 고민하되, 당장 어떠한 방도가 없다면 생각을 잠시 멈추고, 상황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어가는 지혜도 필요한 듯하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일은 이토록 어렵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고민이나 답답함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빈번히 찾아온다면, 한 달에 어느 하루를 정해놓고 '고민과 답답함을 위한 날'로 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또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다.


이건 나보다 훨씬 지혜로운 누군가가 쓰는 방법인데,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잘 되지 않아 매번 해파리를 건져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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