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갈래?"
처음으로 우리 집에 놀러 오기로 한 대학 친구들에게 내가 꺼낸 말이다. 아이들의 친구나 조카가 자고 간 적은 있지만 당시의 이유는 '어쩔 수 없이'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여름, 우리 셋은 서울에서 핫하다는 곳에서 만났고 그중 한 친구와는 15년여 만의 만남이었다. 연락을 못하고 지낸 그 사이, 우리는 결혼을 했고 똑같이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아 남매맘이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왔던 그때와 달리 아이들도 함께 편하게 만나는 자리를 갖고 싶어 우리 집에서 한번 모이자고 한 터였다. 과메기를 택배 주문하고 어디서 배달 음식을 시킬지 대강 머릿속에 그려 놓은 뒤 친구들에게 어떤 술을 준비해 놓으면 되겠냐고 물었다. 평소 술을 즐겨하는 친구들의 대답이 운전해야 하니 술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며 집에 있는 와인 한 병 가져가 보겠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선 "그럼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남편이 새벽에 공항까지 친구를 배웅해줘야 한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었다. 남편에게 친구네서 같이 자고 데려다주고 오라고 하면 되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그 한 마디에 친구들이 갑자기 들뜨기 시작했다. 진짜 그래도 되냐며, 엠티 가는 기분이라며, 칫솔이랑 잠옷만 챙겨 가겠다며, 와인은 한 병 더 챙기겠다며.
그렇게 우리 집에서 1박을 하고 친구들이 떠난 집을 정리하는데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겨울방학에 꼭 다시 초대하자고 졸라대는 첫째의 모습을 보며 자고 가라고 하길 잘했구나 싶었고 예쁜 이모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둘째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새벽까지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세 시간도 채 자지 못한 상태였고 평소라면 기운을 못 차리고 꼼짝 않고 있었을 텐데 친구들이 떠나간 자리를 정리하며 다음 만남을 계획하고 있었다. 20년이 지나도 20년 전과 다를 게 없음에는 굉장한 힘이 있구나 생각하며.
브런치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썼던 글 중에 하나가 혼자만의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도 혼자만의 시간을 필사적으로 사수하고 있으니 그게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귀한 시간만큼 그들과의 시간도 똑같이 사수해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지금 떠오르는 그 사람이다. 나에겐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자고 간 대학 친구들이 그랬고 며칠 전 오전 산책을 함께 한 육아 동지들이 그랬다. 첫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 하원 버스에서 내린 후 매일 같이 노는 아이들을 함께 지켜보던 육아 동지들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그들과 함께 할 시간이 현저히 줄었고 여전히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음에도 이제는 약속을 잡아야 커피라도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얼마 전 그들과 커피 한 잔씩 들고 오전 산책과 점심을 함께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장갑을 나눠 끼고 걷는 모습이, 나란히 앉아 똑같은 메뉴를 먹으며 소곤거리던 시간이 참 애틋하다.
20대의 인간관계와 40대의 인간관계는 많이 다르다. 현저히 좁아지지만 깊어지기에 아쉬움은 없다. 아무리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세상이라고 외쳐봐야 우리에겐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