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못한 어른
뭐라도 하고 싶은 어른
둘째와 소아과를 다녀오던 길, 우리 모자 앞으로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 넷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담배에 불을 붙였고 담배 연기와 냄새는 우리 모자를 덮쳤다. 그때부터 나의 머릿속에선 온갖 문장들이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튀어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대각선 횡단보도, 동시 보행신호로 운영되고 있는 집 앞 사거리에 멈춰 섰고 남학생 무리의 나머지 세 명도 버젓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 이 지경이라고?
"얘들아, 너희들 지금 뭐 하니?"
"저기요,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주지 마시죠?"
"얘들아, 아무리 그래도 걸어가면서 피우는 건 아니지 않니?"
"저기요,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어떤 말을 고를까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내 옆에 있는 둘째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점철되자 두더지들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초록불이 켜졌고 나는 둘째의 손을 꼭 잡은 채 직진 방향으로 건너며 대각선 방향으로 멀어지는 남학생들의 뒷모습을 쏘아보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두더지 하나를 골라 입 밖으로 내뱉을 걸.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계속 찝찝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하길 잘했다고 결론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펄쩍 뛰며 앞으로도 모른 척하라고 했고, 인터넷에 '흡연, 고등학생'으로 검색해 보니 하나같이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뿐이고, 동네 어르신도 지난번에 뉴스 못 봤냐며 그러다 큰일 날 수 있으니 그냥 두라고 하셨다.
그럼 그들의 그릇됨은 누가 바로 잡아줄 수 있을까? 어른이 가만히 있는 게 청소년을 돕는 일인가? 청소년의 그릇됨을 바로 잡지 못하는 어른 또한 그릇된 게 아닐까? 가만히 있는 게 정상인 세상이 정상인가? 결론을 내려놓고도 씁쓸한 마음을 토해낼 곳이 없어 글이라도 써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주기라고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믿고, 어른을 믿고 있다가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버린 그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른들은 무책임해서 자꾸만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