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했던 도하 비행
카타르 도하 비행은 아부다비에서 약 40분 정도 걸리는 매우 짧은 비행이다.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도하 비행을 많이 했지만 요즘처럼 신난 승객들이 많은 도하 비행은 해본 적이 없다. 이번 비행에서 나는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일해서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월드컵 기간 도중 도하로 가는 비행은 각종 유니폼을 입고 온 사람들로 꽉 차는데 모든 승객들이 비행기에서부터 이미 신나 있다. 미국, 포르투갈, 브라질, 스페인, 독일, 세네갈, 일본, 한국 등 자기들 국기가 그려져 있는 유니폼들을 입고 타거나 축구공 모양의 선글라스, 응원용 머플러,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나 모자 등을 쓰고 오는 데 다들 이미 보딩 때부터 상기되어 있어서 보는 나도 다 신이 났다. 월드컵이 세계인의 축제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어제 한국 팀은 아쉽게 3:2로 졌지만 지난 경기 때문인지 손님들과 스몰 톡 하는 것도 재밌었다. 다들 지난밤에 한국과 가나 전 경기를 봤다며 한국이 정말 경기를 잘했는데 가나한테 져서 놀랐다는 말을 했다. 다음 팀은 포르투갈이지만 포르투갈은 이미 16강행을 확정 지었기 때문에 경기를 좀 약하게 할 수도 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한국의 16강행을 기원한다는 말과 함께..
스태프 트래블을 이용한 승객들도 많았다. 오프를 이용해서 자기 나라 경기를 보러 간다고 한 세네갈 출신의 한 사무장도 봤고, 이미 경기를 보고 돌아오는 포르투갈 출신의 동료도 봤다. 도하로 가는 길은 다들 즐거워 보였지만, 도하에서 돌아오는 비행은 다들 피곤해 보였다.
바쁜 스케줄로 인해서 난 아쉽게도 카타르 월드컵을 보러 가진 못하지만, 이렇게나마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새로웠던 경험이었다. 특이했던 건 손님들이 다들 신나서 그런 건지 설레서 그런 건지 정신이 없는 건지 평소보다 정말 많은 손님들이 소지품을 두고 내렸다는 점이다. 수십만 원의 돈이 들어있던 지갑부터 해서 여권, 패딩, 아이팟, 면세품까지... 아무래도 설레는 여행일수록 소지품 잃어버릴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여러 번 확인하는 건 필수다.
아침 9시에 회사로 가서 오후 한 시면 돌아오는 짧은 비행이지만 이런 축제 같은 비행이라면 언제든 해도 좋다. 축구와 월드컵에 진심인 사람들이 전세계에 이렇게나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비행이었다. 다른 나라 손님들이 행운을 빌어준 것처럼 다음번 경기에선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