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그리드와 뉴욕 도시 발전의 역사
‘뉴욕’은 이름값을 못하는 도시이다. 1811년 맨해튼 그리드 계획 수립 이후 지금까지 과거의 도시계획 구조를 유지해 오고 있는 뉴욕은 미국의 도시들 중에서도 오래된 도시로 분류된다. 뉴욕의 콘크리트와 유리벽 뒤에는 19세기 도시계획자들의 노고가 숨어 있으며,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건물과 도로, 그리고 센트럴 파크는 뉴욕이 얼마나 도시계획을 연구하기 좋은 도시인지 몸소 보여준다.
19세기의 뉴욕은 인구 10만명 남짓의 작은 도시였다. 하지만 뉴욕 시 의회는 인구 증가를 대비하여 체계적인 도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렇게 고안된 것이 지금 뉴욕 맨해튼의 모든 부분을 격자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는 맨해튼 그리드이다. 사실 맨해튼 섬의 실제 면적은 강남구와 서초구를 합한 정도의 크기로, 그렇게 큰 구역은 아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무모했던 이유는 격자식으로 철저하게 도시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평탄한 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맨해튼 그리드를 고안한 것은 존 랜들이라는 측량기사로, 땅을 자로 잰 듯이 격자로 나누고 도로에 번호를 부여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식으로 도시계획을 만들었다. East 72nd St. 등의 도로명이 나오게 된 것은 이러한 그리드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를 연결하는 스트릿(Street)은 1번부터 150번까지 번호가 매겨졌고, 남북을 연결하는 대로 애비뉴(Avenue)는 1번부터 12번까지 번호가 매겨졌다.
맨해튼의 빽빽한 빌딩 숲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리학적으로 뉴욕은 다행히 고층건물들이 들어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형을 갖고 있다. 다운타운과 미드타운의 기반암은 강도가 높은 편암으로, 높은 건물의 하중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빌딩 숲 사이에서 격자망의 힘이 드러난다. 미드타운과 로워-맨해튼에 있는 금융 지구를 비교해 보면 밀집된 빌딩 숲 사이에도 일정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뉴욕의 잔재가 남아 있어 비교적 덜 정돈된 격자 구조를 가진 로워 맨해튼의 고층 건물들은 지도 없이 찾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위치해 있으며, 서로 얽히고 얽혀 햇빛을 차단하며 주변까지 어둡게 만든다. 그에 비해 정돈된 격자 구조로 이루어진 미드타운의 고층건물들은 일정한 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건물들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여유 또한 보여준다. 격자 구조로 인해 뉴욕의 건물들은 많은 제약에 마주치게 된다. 누구도 길을 덮으면서 건물을 올릴 수 없으며, 임의로 블록을 통합할 수도 없다. 이러한 통제와 질서 속에서 뉴욕의 건물들은 자유를 추구했다. 재정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맨해튼의 건물들은 섬세한 건축적 조정을 통하여 통일적인 도시 경관을 만들어냈으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유연성 또한 갖추고 있다.
맨해튼 도시계획에서 가장 돋보이는 존재는 단연 센트럴파크일 것이다. 여러 격자를 하나로 통합한 거대한 블록인 동시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는 마천루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자연적 요소를 갖춘 센트럴 파크는 1850년대 말에 조성되었다. 센트럴 파크의 원래 용도는 뉴욕 전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유수지였다. 이는 당시 뉴욕 항의 관세 수입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공사인데, 이러한 유수지의 확장 공사에 맞춰 주위를 도시개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센트럴파크이다. 경관을 신경써서 도시계획을 진행하는 ‘경관 인프라’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센트럴파크는 현재 뉴욕의 아이콘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격자망의 질서와 통제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뉴욕의 건물들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맨해튼 그리드’ 구조에 대한 이해는 센트럴 파크와 월 스트리트, 브로드웨이 등 너무나도 유명한 뉴욕의 랜드마크를 색다른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