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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용 Oct 08. 2020

고독한 취준일기. 01

공짜 뽑아먹기

 대학생를 돌이켜 가장 후회하는 것은 별다른 게 아니라 내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의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빨아먹지 못한 것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정보들을 미리 접한 신입생들이 등록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학교의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 같아보이는데, 나는 별로 그러지 못했다. 뭔가 학교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유료로 운영되는 프로그램보다 퀄리티가 떨어질 것 같았고 촌스러워보였다. 그래서 졸업을 앞뒀을 때쯤에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취업 상담 프로그램이나 취업 연계 프로그램들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비싼 등록금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않았다는 후회가 커서 졸업 후 제대로 취준생의 탈을 썼을 때 가장 먼저 다짐한 것은 국가 운영 프로그램을 있는대로 다 이용하자! 였다. 그래서 졸업장을 받자마자 신청한게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었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에 대해서 하나 말하고 싶은게 있는데, 주어진 학기를 모두 이수했다면 (8학기면 8학기, 6학기면 6학기) 졸업유예생이라도 신청가능하다. 나는 8학기 수료 후 졸업 보류 상태에서 구직활동지원금을 신청했다. 처음 신청할 때 졸업예정서를 제출했는데, 따로 서류를 보충하라는 연락이 와서 이수수료증명서(정확한 이름이 기억 나진 않는다.)를 제출해서 통과되었다. 모든 학기를 이수했다면 졸업유예생이라도 신청가능하다. 그리고 알바를 하더라도 주 20시간을 넘지 않으면 신청가능하다. 단, 근로계약서를 첨부해야한다. 나도 신청 당시에는 주 18시간 알바를, 심지어 투잡을 하고 있어서 두 군데에서 모두 근로계약서를 받아 첨부했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조건이 맞는 취준생이라면 모두가 받았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국에 알바 시간까지 줄어들고 알바비가 한층 깜찍해지면서 아니였으면 어쨌을까 싶을 때가 많다.)

 그 다음으로 신청한 게 내일배움카드였다.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고 직접 은행에 가서 발급받았다. 유의할 것이,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신청할 때 신한은행, 하나은행 둘 중 한 군데에서 새로 통장을 개설해 카드를 만드는데, 그런 다음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해 또 다시 새로 통장을 만들 경우 금액제한통장으로 개설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 내일배움카드로 수업을 신청해 들을 경우, 수업료를 청년구직활동지원금으로 납부할 수 없다. (이 부분 때문에 내일배움카드를 만들어 놓고 한번도 사용을 못하고 있다. 내일배움카드로 수업료 할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100%가 되지 않을 경우 수업료가 꽤 비싸서 나에게는 좀 부담이다.)

 또한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신청했다면, 주기적으로 해당되는 센터에서 센터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문자가 날라온다. 처음에는 직접 가는게 귀찮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시간과 힘을 써가면서 가도 많은 걸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신청하지 않았다. 또 무료를 믿지 못하는 옛날 버릇이 도졌었다. 그러다 점점 취준의 압박이 목을 죄어오고, 나 스스로 '내가 아가리 취준생인건 아닌가' 검열을 시작하다보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문자가 날라오는대로 일정과 내용을 확인해 20%정도의 괜찮은데 생각만 들어도 바로 신청했다.


 취준생에도 계급이 있다면 나는 저 지하 밑에 꼬라박힌 돌맹이 정도의 작디작은 최하층계급일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취준 시작 어언 3개월, 아직 서합조차 한번도 되본 적 없는 햇병아리 생초짜 취준생이라는 거다. 그래도 어쩌면 바스라진 모래급의 취준생보다는 높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가고 싶은 직무 하나는 확실히 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거말고는 뭐 하나 내새울 것 하나 없다. 자기소개서도 몇 번 안 써봤고, 사실 아직 좋은 자기소개서와 나쁜 자기소개서의 차이도 잘 모르겠고, '직무 중심'으로 쓰라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쓰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이력서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요즘 센터 교육 프로그램들도 전부 zoom을 이용해 화상으로 진행된다. 먼 곳까지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요즘 같은 날씨는 도리어 나가고 싶은 날씨라는 거다.

 오늘의 교육 프로그램은 아주 고독하게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보통 하루 전에 안내 메일이 온다. 안내 메일에는 zoom 이용 방법이랑, 유의 사항, 그리고 회의실 주소가 담겨있다. 추가적으로 받는 사람을 확인하면 나를 포함해 몇 명이 신청했는지도 알 수 있다. 애초에 그 메일을 확인해보니 듣는 사람이 몇 명 없긴 했다. 그래도 나는 나 빼고 모두가 노쇼를 할 줄은 몰랐다. 일단 회의실에 입장하고 나서야 그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고 카메라를 키고 마이크를 낄 때까지 아주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수업은 일대일로 진행되었고, 덕분에 나는 맞춤형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전문 자소서 컨설팅을 받으려면 거금을 줘야하는 판국에 무료로 일대일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수업 중간중간 사소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내 직무와 연관된 질문들을 다양하게 할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물론 어색하고 조금 진땀이 나기도 했다. (나는 내향형 80의 지독한 I 인간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나서 이렇게까지 만족감이 충만한 적은 처음이었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이제 모두 졸업을 하고 취준생이 되었다.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청년구직활동지원금부터 시작해서 나라에서 무료로 (일단 내 지갑에서 나가는 세금은 없으니까) 제공하는 구직 지원 프로그램이 많다는 걸 모른다는 사실에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에서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모두 이용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나중에 또 세금으로 고스란히 낼 비용들이 아닌가. 무료라고 전문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면, 직접 들어보고 나중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한 푼이 아쉬운 취준생 입장에서 그런걸 따지기도 뭐하고.


 언젠간 취뽀했다는 글을 올리는 그날까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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