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근이 Nov 10. 2020

01. 용기, 끈기 그리고 버티기

영어 바보 약국 보조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발견했던 한국과의 차이점 중 하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출근해서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경우가 훨씬 더 많으니까, 길에서도 버스에서도 쇼핑센터에서도 유니폼을 입은 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처음에는 좀 신기했다. 





2015년 9월 초, 호주 시골 동네의 한 작은 약국에서 약국 보조(Pharmacy assistant)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호주 생활 3년 만에 나에게도 유니폼이 생겼다. 첫 출근은 수요일이었는데, 월요일 오전에 잠시 약국에 들러 유니폼을 받아가라고 했다. 약국 유니폼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정말 실용성만을 추구한 옷이었다. 그러니까, 마치 학교 체육복 같은 투박한 남색 셔츠에 약국 마크가 새겨져 있었고, 하의와 신발은 그냥 검은색으로 아무거나 맞추면 된다고 했다. 





2015-2016 첫 번째 약국 유니폼 (운동복 아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유니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것이 좋았고, 이제는 더 이상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쇼핑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좋았다. 매일 출근 전 아침마다 옷이 가득한 옷장 앞에 서서, 이 많은 옷들 중에 오늘 입을 옷은 대체 왜 없는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이제 안녕이었다.



첫 3주간은 약국 보조 명찰을 달고 파트타임으로 주에 20시간씩 일했다. 이미 세 달 전에 약사 보드에 인턴 등록을 한 상태에서 구직을 했었지만, 취업하고 보니 인턴 약사로 일을 하려면 서류 절차가 아직 더 남아있었다. 앞으로 1년 간 나를 감독해줄 '프리셉터 약사'와, 일하게 될 '약국' 정보를 등록하는 서류를 우편으로 보냈는데, 간단해 보이는 이 절차도 처리되는 데에 몇 주가 소요되었고, 그동안에는 인턴 약사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처리했어야 했는데... 불찰이었다. 



뭐, 생각해보면 약국 보조로 출발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약사로 일한 시간이 5년이었다 한들, 그 후에 일을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벌써 또 3년이었고, 호주에서는 이제 막 졸업 한 신규들보다도 모르는 게 더 많은 상태가 아니었던가.



약국 시스템이 한국과는 정말 많이 달랐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상품 종류도 한국보다 훨씬 다양해서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약국은 물론이고 호주에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인 나에겐 정말 하나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계산대에서 현금/카드 계산하는 완전 기본적인 것부터 배워나갔다. 그날 배운 것들을 열심히 메모하고, 사진도 찍고, 퇴근하면 다시 워드 파일로 정리해서 외우며 똑같은 질문을 두 번 하지 말아야지 노력했지만, 질문으로 가득 차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닥치는 상황별로 배운 내용들이 쌓여가니, 생각만큼 일이 빨리 늘지 않아 답답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도저히 넘지 못할 것 같은 영어의 벽이었다. 




우리 약국에는 나를 포함해 총 7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그중에 영어 바보는 오직 나뿐이었다. 나의 프리셉터이자 약국장님은 뉴질랜드 사람, 약국에서 영주권 스폰서를 받고 2년 계약으로 일을 하고 있던 풀타임 약사는 태즈메이니아에서 대학을 나온 네팔 사람, 그리고 이곳에서 몇 년간 일해온 다른 약국 직원들은 모두 호주인들이었다. 그 틈에서 일을 배우던 나는 그저 작고 작고 또 작은 존재였다.



스피킹이야, 처음부터 워낙 자신이 없었던 터라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 이미 예상을 했었다. 그런데 실전에 부딪혀보니 스피킹 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 '리스닝'이었다. 호주 영어는 억양이나 표현 자체가 미국이나 영국과 다른 부분이 많다. 시골로 와서 대부분 노인인 손님들을 대하다 보니 그 차이가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나름 몇 년간 호주에서 지내오면서 거기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처음 몇 달간은 손님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



낯선 상황에서 듣는 영어는 더 들리지 않고, 당황하면 아예 들리지 않는다. 한국 약국에서는 환자분들이 처방전을 손에 들고 오면 조제를 하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일반약이나 일반 상품을 사러 오는 거라.. 특별한 다른 상황이 없지만, 호주 약국은 그렇지가 않다. 손님이 약국에 걸어 들어와서 자기 이름을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찾는, 아주 다양한 경우들이 있다. 나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말을 알아듣는 것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세상에 무슨 특이한 이름이 이렇게나 많은지 이름부터 알아듣기 힘들고, 약을 포함한 여러 상품 이름도 알아들을 수가 없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진짜 똥 멍청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높은 영어 시험 점수를 받은 것은 소용이 없었다. 또박또박 말해주는 리스닝 시험공부를 했던 나는 그냥 온실 속의 화초였을 뿐 현실에는 그런 배려는 없었다. 이름을 못 알아 들어서 물어보고, 또 한 번 더 물어봐도 안 들리고, 스펠링을 물어봐도 너무 빨리 말해서 못 받아 적고, 할 수 없이 직접 적어달라고 해서 받아봐도.... 갈겨쓴 글씨마저 못 알아보겠는데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약 이름이 복병이었는데.. 내가 호주 약 브랜드를 잘 모르고 있어서 처음 들어보는 제품도 많았지만, 분명히 아는 약인데도 발음과 강세가 한국과 달라서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았다. '들어본 것 같은데 뭐더라?' 싶은 그런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 흔한 베로카, 베타딘 조차도 처음엔 못 알아들었고, 'Wart-Off'라는 사마귀 약을 찾는 손님에게 당당하게 물을 가져다준 적도 있다. 뭐, 옆에 있던 14살짜리 주니어 직원이 자기도 Water로 들었다고 위로해주긴 했다만..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병으로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거나, 말하는데 문제가 생겨서 제대로 말을 못 하는 환자가 오면 나는 정말 10%도 못 알아들었다. 약국 리테일 매니저님이 그걸 다 알아듣는 걸 보고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무슨 초능력자인 줄.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약국에 손님이 들어오면 인사를 하고 맞이해야 하는데 다가가기가 무서웠다.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늘 앞섰던 것이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나고 나서 나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매니저님이 나에게 이제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영어는 훨씬 더 안 들리는 걸 알기에, 벨이 울리면 울고 싶은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어야 했다. 일단 전화를 받으면 통화 내용을 듣고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알아듣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모두 온전히 나의 몫이다. 사실 내가 혼자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거나 전달해줘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어디의 누가, 무슨 일로 전화해서, 어떤 걸 알고 싶은지 똑바로 알아듣고 그걸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그때는 너무 어려웠다.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전화로 "First Aid Kit"을 찾는 손님의 말이 나에겐 "Thursday Quick"이라 들렸는데, 이미 2주간 내가 모르는 상품명을 너무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런 상품도 있나?'라고 생각하고 매니저님에게 우리 약국에 Thursday Quick이라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걸 또 First Aid Kit 말이냐고 찰떡같이 알아듣는 매니저님 ㅎㅎ) 창피하고 부끄럽고 속상한 일들을 그렇게 계속 반복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퇴근하면 전화 통화에 사용되는 영어 표현, 업무상 필요한 영어 표현들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또 새로운 영어 공부의 시작이었다. 



신기한 건 전화를 받기 싫으니 약국 손님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훨씬 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원래는 누군가 약국으로 들어오면 어디론가 숨고 싶었었는데, 이제는 그냥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가게 되었다. 그들과 대화하고 있는 동안은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니까.






몇 달이 흐르는 동안 나는 점점 성장했다. 호주 약국 시스템을 이해하게 되었고, 약국 손님들 얼굴과 이름도 외우게 되었다. 누군가 문으로 들어오는 순간 바로 그 사람이 원하는 걸 들고 맞이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거나, 말을 잘 못하는 단골 환자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대부분 다 알아듣게 되었다. 상황이 역전되어 호주 사람인 약국 직원들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늘어갔다. 



그렇다고 나에게 영어의 벽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턴을 마친 후에 이직을 하고 나서 낯선 환경에 익숙해질 때까지 이 두려운 과정을 또다시 반복해야 했고, 호주에서 일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약국 전화벨 소리는 피하고 싶은 스트레스니까.



얼마 전,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그때 자기는 내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영어 바보인 상태로 계속 약국에 출근을 할 용기가 있었냐며. 그러게. 나는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뎌낸 걸까 도대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