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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Dec 15. 2020

검사 날이 다가온다.

뾰족해서 슬픈 날들이여..

진료실 앞에 앉아있으면 언제나 덜덜덜... 사시나무 떨듯 덜덜덜...


차라리 나무로 태어났으면 힘껏 떨며 꽃가루라도 날릴 텐데


이건 뭐 인간으로 태어나서 날릴 꽃가루도 없고..


그리하여 하등의 가치도 없는 떨림을 오늘도 진료실 앞에서 느껴본다.




1기 암환자라고 수술만 하고 끝나는 건 아니다. 항암과 방사선치료는 받지 않지만 재발의 위험은 항상 안고 있기에 꾸준한 추적관찰은 필수다.

"(항암은 안 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검사는 잘 받아야 합니다!"

그때는 의사의 이 말이 감지덕지였다. '아! 드디어 끝났다.' 이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잘 살 것이고 검사 그까짓 것 하면 되지, 별 거 아니라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터무니없이 순진했던 거다. 너무 순진했거나 너무 들떠있었거나. 

이렇게 조마조마한 삶을 살게 될 줄 몰랐던,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한마디에 행복해하던 암환자.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때의 감사함을 잊어버린 간사한 인간이 되었다.

몇 번의 검사를 거치며, 몇 번의 떨림을 느끼며.


반복되는 검사와 반복되는 긴장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3개월마다 피 한통을 뽑기 위해 왕복 5시간을 오가고, 쌓여가는 조영제에 부작용이 생기면서 예전의 감사함과 기쁨은 생각지도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애써 변명을 하자면 갑자기 생겨버린 조영제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해서 CT를 찍고 나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빨리 뛰곤 했다. 이러한 내 증상에 의료진은 안타까워하며 조영제 부작용을 막는 또 다른 약물을 처방해 주었고 그 약물의 부작용과 앞으로 보호자를 동행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내 몸에 무엇을 넣고 있는 걸까. 조영제를 맞기 위해 또 다른 약물을 넣어야 하는 이 상황을 어찌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건강하려고 검사하는 건데, 왜 건강해지는 기분은 들지 않는 걸까.




심란했던 검사를 끝내고 일주일 뒤 진료실 앞에 앉아있을 때면.. 정말 피가 말린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그것은 몸을 하도 떨어 피가 증발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도 아니면 몸이 하도 차서 피가 얼어버린 느낌이랄까.

그 떨림은 수험생의 떨림과도, 임신을 확인하는 여인의 떨림과도 같다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 모든 순간들을 경험해보았던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검사 결과 좋네요. 3개월 후에 봅시다."라는 이 짧은 말 한마디를 들을 때면 '내가 왜 그렇게 떨었나..'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피식 나온다. 이렇게 금방, 이렇게 좋게 끝날 것을 왜 그리 걱정하고 왜 그리 떨었는지...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3개월간의 기분 좋은 휴가. 그러다 보면 또...

검사날이 다가온다.


한 달이나 남았다. 두 달은 평범하게 지나갔고 이제 검사까지 한 달이란 시간이 남았다. 그 긴 시간 동안 생각한다. 저번 검사는 좋았으니 이번에도 좋을 거라고.. 어김없이 피식 웃으며 진료실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번 검사도 금방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애써 생각해본다. 그러나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소화도 안 되는 것이 왠지 얼굴에 혹도 생긴 것 같고 배도 아파온다. 그동안 잘 나오던 소변은 묘하게 나오지 않고 몸 이곳저곳이 기분 나쁘게 신경 쓰인다.

이렇다 보니 검사날이 다가올수록 정신도 멀쩡하지는 않다. 나는 무기력증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거나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드라마에 빠져있기도 한다. 그러다 때로는 인간이길 포기하고 다른 생명체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예민함의 극치를 넘어 가시 돋친 고슴도치 같을 때도, 혹은 쓰리펀치 날리는 양아치 고양이 같을 때도... 아니면 '어어~ 건들기만 해 봐! 다 물어버릴 거야~'라고 외치는 집게발 치켜든 게... 같을 때도 있다.


이 얼마나 피곤하고 쓸데없는 감정 소모의 반복인지...


그럼에도 이 시기의 변화무쌍한 예민함은 거부할 수가 없어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이 시기, 나보다 더 힘든... 원치 않는 피해자들을 기어이 만들고 만다.


피해자인 아빠는 피해자인 아들에게 "현아. 엄마 요즘 건들면 안 돼... 그니까 그냥 무조건 알았다고 해."라고 말하고 아들은 아빠에게 "알았다고 해도 엄마는 화내는데..."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부자의 속닥거림을 구석에서 듣고 있노라면 나는 이내 또 짜증이 나서 "니들은 아무것도 모르잖아!"라는 싫은 소리를 내뱉는다.


갑자기 불벼락을 피해야 하는 남편과 아이의 심정은 어떠할까...

며칠 전만 해도 기분 좋게 놀아주던 엄마가 물 한 컵 곱게 따라주는 법이 없고, 며칠 전만 해도 기분 좋게 저녁을 차리던 아내가 짜증을 내며 숟가락 하나 놔주지 않는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려 노력을 해보지만, 당장 진료실 앞에 앉아있을 내 모습이 상상되어 또다시 예민함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렇듯 검사 시기는...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삶도 좋지 않게 흘려보낸다.


앞으로의 내 인생을 결정하는 말 한마디를 듣게 될 시기...

더불어 내 가족의 인생까지 결정짓게 될 시기.

그 말을 듣기 위해 먼 길을 걸어 부작용이 따르는 검사를 해야 하는 시기...


그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없이 감사해야 하는 나 이지만.. 끝이 안 보이는 그 떨림을 참아내기엔 내가 아직 약하다고...


그러니 조금 봐달라고, 이런 나를 이해해 달라고..


오늘도 죄 없는 내 가족들에게 눈빛으로 표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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