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 Dec 21. 2020

자꾸 마음을 터놓으라 하시니...

갑자기 어쩌다가 그럴 수 있으면 터놓겠습니다.

"일하나님이 본인 이야기를 왜 그렇게 담담하게 하는지, 그리고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보시고 다음 시간에 제게 말해주세요. 그게 제가 오늘 드리는 숙제입니다."



'어릴 적 일을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라...

...

아무 감정도 안 드는데. 그냥...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내가 겪은 어린 세계는 단지 그랬을 뿐..

나는 그저 그 세계에서 하루하루 살았을 뿐인데 이제 와서 그때 어땠냐고 물어보면... 내가 아나?

어쩌다 보니 살게 된 나날들을 기억해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감정까지 기억해내라니.. 그 숙제 참 독하다.




'어린 하나야, 넌 지금 어떻니?'

어른이 된 나는 어린 나에게 물어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지금의 나는 엄마를 떠올리고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헛웃음만 나온다. 그나마 헛웃음이라도 나오는 게 다행인가 싶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본다. 행여라도 숙제의 답으로 "웃겨요~"라고 말했다간 원장님에 의해 정신병동에 갇힐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본다.


'생각을 해야 해, 생각을...'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고 나의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와 슬픈 감정을 가질 필요도... 화를 낼 필요도... 애틋함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런 감정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장님한테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내가 머리를 싸매고 어린 시절의 감정을 쥐어짜 내는 동안 우리 아이는 센터에 있는 장난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가끔은 내게 "선생님과 모래놀이 못했어."라든지 "거기 있는 장난감 갖고 싶어."라는 말을 해댔으니 아이는 센터가 싫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 적어도 아이는 센터를 불쾌한 곳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그건 참 다행이구나.




드디어 아이가 기다리던 상담 날이 돌아오고... 아이는 현관에 마중 나온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아이는 "엄마~ 내가 엄마 방으로 놀러 갈게~"라는 말을 해맑게 해왔고, "그래~(제발 놀러 오지 마..)"하며 나는 손을 흔들고 원장님과 마주 보고 앉았다.


"자~ 우리 일하나님! 잘 지내셨어요? 여기서 상담받고 집에 가서 기분이 어땠어요? 후련했다거나, 슬펐다거나~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해볼까요?"


"그때... 자세히 얘기를 못해서 시원하거나 그런 건 없었는데... 그래도 이제 시작하는 거니까~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지 이런 생각했어요."


"그랬군요. 저번에 워낙 짧게 얘기하긴 했으니까요~ 앞으로 저랑 꾸준히 얘기하고 문제점을 찾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예요! 그러려면 하나님이 저를 믿어야 하고, 마음을 치료하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같이 노력해봐요."


그 후 우리는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갔다. 원장님은 내게 어린 시절을 다시 물었고 나는 여전히 덤덤하게 얘기했다. 원장님은 그런 내 반응이 탐탁지 않은지 "느낌으로 한번 얘기해봐요!"라는 말로 질책 아닌 질책을 했고 그래도 내가 가만있자 날카로운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가 미웠어요?", "아빠가 많이 무서웠겠네?" 이런 식의 질문.. 그것은 내가 느끼기에 마치 날아오는 화살과 같았다. 30년을 숨겨왔던 감정인지라, 이런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나면 '방금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라는 기분으로 한동안 눈만 껌뻑 껌뻑거리게 됐다.

"... 예~.... 뭐. 그렇죠.." 그리고 이게 내가 한 대답의 전부였다.


그렇게 상담시간의 반이 흐르고, 내가 계속 심드렁한 대답을 이어가자 원장님은 질문 대신 공감을 하기 시작했다.

"아효~ 너무 힘들었겠다."라든지 "애기잖아... 하나님은 그때 어린애였어요. 뭘 알았겠어~ 6살짜리 애가. 하나님은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 일들을 겪은 거예요. 한창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화살 같은 질문만 받다가 갑자기 훅 들어오는 원장님의 공감에 나는 놀랐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눈물이 나왔다.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많이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때도 있었고... 이 세상 사는 게 전혀 행복하지가 않아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살고는 있는데 살아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그나마 이제 좀 살려고 하는데 암에 걸려서.. 자꾸 죽으라고 죽으라고 하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원장님은 조용히 내게 휴지를 건네주고는 살짝 미소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아! 드디어 울렸다. 그래~ 이렇게 울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가끔 "응~~ 응~~"하는 낮은 추임새를 넣으며 내 흐느낌의 감정을 더 끌어내려했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상처의 깊이를 확인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금방 눈물을 그쳤다. 축축한 휴지를 돌돌 구기며 마음을 가라앉혔고 더 이상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원장님은 그런 내 모습에 어쩐지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음~..." 하며 한숨을 깊게 쉬었다.


상담이 끝날 무렵 그녀는 내게 말했다.

"상담이...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 하나님 안에 뭉쳐있는 것들이 너무 많고~ 일단 그걸 풀어내려는 의지도 강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걸 가지고 가도 되느냐! 아니요. 그건 안돼요. 지금 괜찮아진다고 해서 진짜 괜찮은 게 아니에요. 겉은 멀쩡해도 속은 계속 남아있게 되니까 그건 무조건 풀고 가야 돼~ 지금 안 풀면 살아가면서 계속 반복될 거예요. 그럼 이게 나중에는 정말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돼요, 물론 지금도 크지만.

그래도, 지금은 약물치료를 한다든지~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일단 상담을 더 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니까. 일단 1년 정도의 상담 계획을 세우고~ 우리 천천히.. 천천히 잘해보도록~ 마음이 나아지도록 해보자고요. 물론 많이 힘들 거예요. 지금 하나님 마음 안에 있는걸 깨기가 상당히 어려워 보이거든요~ 상담받는 동안 많이 아프고 정말 힘들고 지치고 그럴 건데,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해 봅시다, 우리."




내가 상담을 받는 동안 아이가 방에 두어 번 들어왔지만 선생님이 쫓아 들어와 금방 데리고 나갔고, 덕분에 나는 저번보다 편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직 준비가 안된 내 마음을 억지로 끌어내는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그런 기분이 들게끔 하는 원장님이 신뢰가 안돼서..


거기에 종종 내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후벼 파는 말들이... 너무 아파서.


나는 지난날의 내 상황을 재확인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단지 현재의 나를 로받고 싶어서 간 것이었다. 하지만 위로의 시간은 짧았고 아픔의 시간은 길었다. 

원장님은 '암환자로서의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너무 근본적인 문제만을 깊숙이 바라보았다. 


나는 '아픈 나'를 위해 갔는데..

상담은 '아팠던 나'를 위해 돌아가는구나.


점점 마음이 삐뚤어진다. 

과연... 1년간의 계획이 의미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