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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Seattle May 31. 2020

가발가게를 터는 미국 시위대와 쓰레기를 줍는 한국 촛불

2020년 5월 30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멈추기를 기원하며

시애틀 시장이 발행한 긴급 해산 및 통금 명령 문자

강제 해산 명령은 역사책이나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듣게 될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안전한 곳으로 손 꼽히는 지역들에까지 강제 해산 및 통행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방화로 인한 연기가 지척에서 보인다. 엘에이 교민들 사이에서는 1992년 LA 폭동 때와 같이 2020년 LA 경찰들이 부촌인 베버리 힐즈만 철석같이 지키며 시위대를 한인타운 쪽으로 유도한다는 소식이 돈다. 그 시대를 몸으로 받아낸 교민들 사회에서는 미국 정계에서 힘 없는 소수민족인데다 항의도 잘 못하는 조용한 이민자들이 또 다시 총받이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조지 플로이드 관련 시위 여파 중 소확행을 중시하는 히피들의 도시 포틀랜드에서 루이비통이 털린 것과 전국 곳곳의 가발 가게가 털린 것이 어이 없었는데, 후자의 경우 영어가 제한적이지만 은 일을 마다 않는 1세대 한국 이민자들이 흑인 주거지역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이미 코로나로 어려울 자영업 교민들의 추가적인 피해가 우려된다.

조지 플로이드 시위 중 불에 탄 여러 대의 시애틀 경찰차 중 하나
대낮에 공격 당하고 방화 당한 여러 대의 LA 경찰차 중 하나

인간의 극단적인 면을 볼 수 있는 직장에서 문득문득 느끼는 것은, 일부 미국 시민들 중에 시민의식이 있는 척 하지만 푼 돈에 쉽게쉽게 자신의 존엄성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꽤 된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류의 사람들이 지극히 적었고 중국에서는 대놓고 배금주의가 팽배해서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속한 미국 조직에서는 이런 저급한 이기주의를 상수로 놓고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물론 순수하고 인격이 높은 분들도 많지만 자유주의라는 핑계거리와 부실한 공교육 때문인지 건전한 시민사회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들이 많다.


촛불시위가 있을 때마다 내 곁에서 한국의 촛불문화를 지켜본 미국인 남편이 촛불시위 때에도 폭력을 선동하는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었을텐데 어떻게 다 실패했냐고 물었다. 현재 홍콩에서 공산당 지도자들이나 미국 공화당 지도자들이 상대편의 의미 있는 의견을 폭력으로 물들여 퇴색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며, 어떻게 한국의 그 많은 시민들은 그런 방해공작에 넘어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문득 이미 열악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 공립학교 선생님들이 코로나 여파로 해고되고 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이후 세수 감소로 인한 선생님 해고란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만큼 미래 시민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대답은 '도덕, 역사, 사회에 대한 공교육을 기반으로 한 높은 시민의식과 천민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공감대, 명예의식과 자존감.' 이었다. 미국에서도 대학 등록금 정도 내는 사립학교에서는 비슷한 것들을 가르치긴 한다. 하지만 그런 소수에 대한 교육으로 시민의식의 흐름을 바꾸긴 어렵다.


수 개월에 걸쳐 23회까지 진행됐던 박근혜 탄핵 촛불문화제는 누적인원수가 수천만 명에 달했지만 사상자는 커녕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그 흔한 폭행사고 조차 없었다. 이것이 한국의 저력이고 다수 교포들의 자긍심이다. 그리고 신세대 교포 부모들이 그 전 세대 부모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자녀들에게 (때로는 자신들도 서툴은)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권이 걸린 각성의 기회를 가발이나 옷 따위의 작은 사익을 위해 더럽히는 안타까운 미국 시위대 덕에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얼마가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큰 리더십을 보여줬는지 다시금 느꼈다. 그간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으로 여겨진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 진심에서 우러나,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밤이다.


국민의 품격 있는 저력을 보여준 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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