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의 시선으로 보는 프로덕트 사업 전략
스타트업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피터 틸의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는 머리말부터 기술이 갖는 기적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기술이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하게 도와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기술은 세상에 없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혁신적이라도 PMF(Product Market Fit)을 찾지 못하면 조직은 한참을 데스벨리에서 헤매게 된다.
PMF를 찾고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장에서 창조적인 독점을 가져가는 것이다. 경쟁이 없으나 불편함은 있는 뾰족한 구석을 찾아 기술을 기반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 뾰족한 구석을 찾기 까다로운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잠재 시장 규모가 큰) 부분은 이미 시장에서 해결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그게 아니라면 1) 시장 규모가 작거나 2) 불편함의 정도가 적거나 3) 미개척 영역이기 때문이다.
언어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AI 기술로 언어의 장벽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거대 기업을 중심으로 꾸준히 이뤄져 왔다. 구글은 대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2007년부터 번역 시스템을 시작했고, 기술 발전으로 인해 언어 학습에 대한 필요성은 점차 적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점차 공공연하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들 언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바로 '뉘앙스'이다. 추상적으로 표현하자면 언어에는 불분명한 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언어의 모호함이 유추 사고를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언어는 관념을 담는 도구이기 때문에 창작에 섬세한 독창성이 필요하므로 기술만으로 만들어 나가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PMF를 찾은 언어 AI 스타트업들에서는 이러한 언어의 본질을 파악해 뉘앙스에 집중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거대 기업이 해결하던 언어 대 언어 치환의 문제를 넘어 언어의 섬세함을 살릴 수 있는 역할을 제공한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기술을 기반으로 창조적 독점을 찾은 이상적인 스타트업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포스팅은 최근 제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준 Grammarly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Grammarly는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스타트업으로 현재는 실리콘 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영어 교정 서비스이다. 철자뿐만 아니라 관사 교정도 높은 정확도로 제공하고 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글의 용도에 따라 자연스러운 문장 교정을 도와주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글을 쓸 때는 목적에 따라 단어나 문장 구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Grammarly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정교한 추천이 가능하도록 세팅이 이뤄져 있다.
서비스를 일부 무료로 제공하고 있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구독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 구조가 굉장히 명확한 편이다. SaaS 서비스는 일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일반 고객을 lock-in 시키고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익 확보를 위해서 무료 기능과 명확히 차별화된 유료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Grammarly는 유료로 단어 선택/스타일 가이드/글의 톤 등의 수정 플랜을 제안하고 있지만, 무료 기능과 두드러진 차이가 없고 간혹 정확성에 문제가 발견된다는 VOC가 보인다. 그러나 서비스 기반이 머신 러닝과 자연어 처리 기술인 만큼 Grammarly가 프리미엄 서비스로 제공하는 기술은 지속적으로 고도화될 것이다. 이 부분이 PMF를 찾은 기술 기반 서비스의 막강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케팅 : 잠재 고객층은 모든 영어 사용자가 될 수 있으므로 그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기 때문에 때문에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다각화된 마케팅 전략을 펼치면서 유입acquisition을 크게 늘렸다. 22년 기준 DAU가 3천만이라는 지표 보고가 있는데 가히 글로벌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수치이다.
핵심 전략 : Grammarly에서 볼 수 있는 프로덕트의 핵심 전략은 '집중'이다. 라이팅 교정이라는 하나의 가치 제공에 집중했기 때문에 코어 벨류가 굉장히 명확하고 UX가 직관적이다. 크롬의 확장자 모델로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잔존율Retention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든 Grammarly 창업자 듀오도 처음부터 이 서비스를 기획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전에 MyDropbox라는 서비스를 론칭했는데 잠재 고객층이 대학생으로 굉장히 한정적이었고 이에 성장의 한계를 느껴 프로덕트를 매각했다고 한다. 그 이후 영어 글쓰기에 문제를 겪는 모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writing에 집중한 프로덕트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 서비스는 언어 자체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글을 작성하는 것은 유저의 몫이며 AI의 추천에 맞춰 글의 뉘앙스를 수정해나가는 것 또한 유저의 목적과 선택에 달렸다. 그러므로 기술로 인한 언어 학습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정당하고 당연한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기술이 언어에 관여할 수 있는 한계는 아직까지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경계가 허물어지려면 기술이 인간의 사고를 대체할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게 가능할지는 일론 머스크의 행보를 지켜보는 걸로 하자......!^^
파파고와 구글이 지배한 줄 알았던 언어 번역 시장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서비스는 서비스는 단연 Flitto이다. Grammarly가 오로지 기술 기반으로 문장 교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Flitto는 기술이 캐치할 수 없는 언어의 뉘앙스적인 부분까지 번역 및 교정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이 부분을 해결하려면 전문 번역가의 개입이 필요하므로 플리토는 고객과 번역가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플랫폼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핵심 전략 : 플리토가 제공하는 가치는 번역/교정으로 매우 직관적이고 명확하다. 그러나 다른 서비스보다 '전문성'에 방점을 찍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즈니스는 전문적인 글에 대한 수요를 견인해야 순항할 수 있다. 이 부분을 고려하여 현재 B2B 전문 번역 서비스와 기업 특화 API 번역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질적인 수익을 증대시켜줄 수 있는 핵심적인 key가 되지 않을까 싶다. (찾아보니 B2B로 흑자 전환을 이뤘다고 합니다. - 기사)
AI 번역 및 교정은 기존에도 존재했던 서비스이지만, 플리토는 언어가 가진 본질적인 특성(뉘앙스의 까다로움)을 이용하여 퍼플오션을 찾아나갔다. 기술 개발과 인적 자원의 개입은 기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차별화를 가져갈 수 있는 솔루션이다. 또한, 사업의 핵심이 모인 언어 데이터를 축적하고 가공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기술 중심의 고도화가 이뤄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플리토는 Grammarly에서 보이는 고질적인 AI의 교정 오류 문제도 해결 가능한 기본 구조를 갖고 있다. 언어를 기반으로 한 잠재 시장 규모는 굉장히 크기 때문에 핵심 기능에 집중한 뒤의 북미 시장으로의 진출을 하게 된다면 그 행보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웹툰·웹소설·메뉴 번역기, 유적지 전문 번역기 등 서비스는 버티컬 사업으로 구조화하며 확장되고 있다.
글을 마치며, 세계에서 스타트업 창업 비율이 가장 높다는 이스라엘에서는 한 번 창업에 실패한 사람에게 더 많은 창업 비용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실패는 성공보다 훨씬 더 좋은 경험임을 입증해 보이는 과감한 정책이 아닐까 싶다. 스타트업을 단 두 개의 단어로 정의해 본다면, '도전'과 '실패'가 되지 않을까? 유난한 도전과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집념을 놓지 않는 것, 성공의 열쇠는 단순 하지만 그 여정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번 상반기의 목표를 '지속적인 실패'로 꼽았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전과 실패가 모여 단단한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앞으로 다가올 모든 실패에 스스로 너그러워지길 바라며, 산뜻하게 시작해보는 23년이다. :)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