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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Jul 06. 2020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네 기억을 믿지 마라

"네 기억을 믿지 마라. 그 놈은 살인자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 본 글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 기억을 믿지 마라. 그 놈은 살인자다.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습관만 남은 연쇄살인범이 있다.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원신연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김영하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 분)는 뜻밖의 사고를 당한 이후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접촉사고를 낸 태주(김남길 분)와 마주치고 직감적으로 그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이후 태주는 의도적으로 딸 은희(설현 분)에게 접근해 자신을 남자친구라고 소개한다.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믿을 수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병수의 시선에 치우쳐 진행되는 이야기는 관객에게 긴장감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안긴다. 안면 근육이 들썩이는 순간 병수의 기억은 초기화 상태로 돌아간다. 이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서도 유효하다. 딸을 구하기 위해 정면 돌파하는 장면에서도 그의 기억은 한순간 지워져버린다.


때문에 그는 녹음기에 목소리를 기록하는 행위를 지속한다. 딸 은희의 권유로 시작된 이 일은 이야기 전개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자꾸만 지워지는 기억을 기록함으로써 그는 초기화 상태에서도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할 수 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하지만 녹음기에 의지한 채 전부 기억을 되살리기란 쉽지 않다. 이따금 병수는 자신마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딸 은희를 타인으로 착각해 목을 조르는가 하면, 태주가 자신에게 살인 증거를 덮어 씌우려하자 사실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그가 이따금 찾아가 만났다고 생각했던 누나가 존재하지 않고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건은 더욱 휘몰아친다. 심지어 누나와 함께 태웠다고 생각했던 자동차의 주인이 태주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영화는 다시 한 번 전복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믿을 수 없는 주인공의 특성을 내세우며 열린 결말을 암시한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사실은 태주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떠올리는 순간 영화는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며 끝나버린다. 태주가 진짜 살아있는 사람인지, 혹은 이마저 병수의 망상인지, 관객은 마지막 순간에도 완벽하게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예상 가능한 결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알츠하이머에 걸린 화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영화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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