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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Sep 15. 2020

영화 <소년시절의 너>, 서로가 전부이던 시절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영화 '소년시절의 너'


* 본 글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맹목적인 사랑이 한 시절을 수 놓을 때, 삶은 조금씩 온기를 찾아간다.

증국상 감독의 영화 '소년시절의 너'는 서로가 전부이던 두 사람의 시절을 다룬다.  베이징 대학에 진학하면 시궁창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 믿는 첸니엔(주동우 분), 그리고 밑바닥 인생에 젖어 살아가는 양아치 소년 베이(이양천새 분). 우연히 찾아온 두 사람의 만남은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단단하게 붙든다.

'소년시절의 너'는 애틋한 로맨스를 그리는 동시에 중국 내 학교 현실을 사실적으로 고발한다. 오직 대입을 위해 청춘을 바쳐야하는 학생들, 대학에 진학하면 완벽한 삶이 찾아올 것 처럼 종용하는 학교, 그리고 무분별한 경쟁에 가려진 폭력들까지.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오직 입시만을 향해 달려야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모든 일들은 사치로 취급된다. 설령 자신의 눈 앞에서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철저히 침묵한다. 한때 방관자였던 첸니엔이 피해자가 될 때 현실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러시안룰렛처럼 돌아가는 괴롭힘 속에 방치된 아이들, 그 한 가운데 첸니엔이 있다.


이때 베이는 첸니엔의 삶에 숨구멍을 만들어준다. 베이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첸니엔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매일 등하굣길을 함께하고, 첸니엔은 베이의 집에 머물며 명문대에 갈 준비를 서두른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을 수 없었던 어느 날, 첸니엔은 더욱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대입 시험 앞둔 날 학교폭력을 주도하던 웨이 라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첸니엔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너에게 가장 좋은 결말을 줄게."


베이는 첸니엔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첸니엔을 지키기 위해 몇 걸음 떨어져 걸었던 시간들은 모두 스토킹이라는 이름으로 뒤덮고, 경찰들이 바라보는 한 가운데 첸니엔에게 모진말을 던지며 사건을 은폐한다. 그리고 첸니엔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베이가 꾸민 모든 일에 탑승하지만, 그들의 처절한 연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정작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진학하게 된 첸니엔에겐 커다란 죄책감이 모래시계처럼 쌓여가고, 서로를 위한 희생이 비극으로 끝나기 전에 연극은 멈춘다.


작품 말미, 카메라는 각자의 교도소로 향하는 두 사람을 따듯한 빛과 함께 비춘다. 갈라지는 두 개의 길 앞에서 그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암묵적으로 약속한 채 먼 길을 떠난다. 그렇지만 연극은 끝났으므로, 그들은 서로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난 뒤, 여전히 첸니엔의 몇 걸음 뒤에서 함께 걷는 베이의 모습은 그들의 결말이 행복한 쪽으로 기울어졌음을 보여준다. 첸니엔은 과거 자신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고, 그런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늘 모자를 뒤집어 쓴 채 얼굴을 가리던 베이는 이제 당당히 cctv를 마주본 채 웃어보일 수 있다. 여전히 첸니엔의 뒤에서, 발걸음을 맞추며 같은 곳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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