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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Apr 06. 2021

소설보다 봄 2021 : 위수정 <은의 세계>

“이게 다 전염병 때문이야.”



* 본 글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게 다 전염병 때문이야.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전과 다른 리듬을 가진 일상들.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익숙해진 현실을 오늘날 문학은 그대로 반영한다.


위수정의 ‘은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소설에는 결혼을 약속했으나 뜻밖의 전염병으로 식을 올리기는커녕 신혼여행도, 혼인신고도 미뤄버린 하나와 지환이 등장한다. 온라인은 ‘안전한 영역’이기에 프리랜서 성우인 하나는 이전보다 더욱 바빠졌고, 지환은 재택근무로 인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바쁘다. 결국 이들은 도우미를 부르게 된다. 바로 하나의 사촌 동생인 명은이다.


하나와 명은,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경은 오빠는 “거의 친남매처럼” 지낸 사이다. 때문에 하나는 어렵게 지내는 명은을 외면하지 못하고 돕는다. 하지만 하나가 바쁜 일상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지환은 이전보다 명은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지 못하는 명은 때문에 지환은 꼭 마무리 청소를 다시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자칫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평범함’ 안에는 팬데믹이라는 잔혹한 현실이 선명하게 담겨있다. 마스크를 쓰고 대면하는 세 사람, 뉴스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실업자의 시위들, 남의 집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라면을 먹었다고 해고된 명은. 그리고 명은이 결국 마스크 공장으로 가버리는 것 까지.


“이게 다 전염병 때문이야.”


모든 감정이 폭발해버리는 순간, 하나가 뱉은 대사는 이 소설의 핵심을 관통한다. 애초에 전염병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온라인 산업이 호황을 맞은 것도, 그래서 ‘우리는 다행인 줄 알자’라고 말하는 것도, 너무 바쁜 나머지 명은을 집에 들이는 것도, 그러다 혹시나 명은이 집 안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을지 의심하는 것도. 누군가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고,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리는 세상이 왔다.


다만 소설은 단순하게 시의적인 모습만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그 이면에는 어딘가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분명 칼에 맞은 것 같은 통증을 느꼈으나,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상황들이 지환의 앞에 펼쳐진다. 달리는 차에 날아가는 것 같은 현실을 마주했으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그 모호한 현실은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폭발한다. 분명 지환과 명은은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명은은 처음부터 지환의 질문을 들어본 적 없다는 듯 “네?”하고 되묻는다. 분명 눈 앞에 명은이 있지만, 애초부터 거기에 없었다는 듯이, 그저 있을 뿐이다.


“혼자 있는 사람 같았다.”


이 대목에서 지환이 뱉는 대사는 동시에 오늘을 조명한다. 모두 함께 있으나 함께이지 않은 지금, 어쩐지 홀로 남은 것 같은 외로움과 당혹스러움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소설은 지환과 하나, 그리고 명은의 관계를 다루면서 시대의 조각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혐오적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명은에게 호의를 베풀던 하나는 어느 순간부터 명은을 “미친년이야”라고 말한다. 하나에게 명은은 “그런 게 있는” 사람이고, “멍청한” 사람이 된다. 못마땅한 지점들에 그럴싸한 이유들을 포장하는 방식으로 명은은 이제 그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된다.


위수정 작가는 “자신과 다른 계급, 다른 세계를 시야에서 차단하기 너무 손쉬운 환경인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팬데믹이 더해지면서 각자가 지닌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죄책감 없이 분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전과 후로 나뉘는 세상. 그 어딘가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삶을 변주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그럭저럭 꽤 그럴싸하게 굴러간다. 하지만 그 변주들이 과연 우리에게 꽤 괜찮은 방향인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무기력함에 속아 일상이 잿빛으로 물들지 않도록, 우리는 끝없이 우리의 삶을 다독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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